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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원효암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유물 일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9474
한자 梵魚寺 元曉庵 木造觀音菩薩坐像 腹藏物一括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 범어사 성보박물관
시대 고려·조선/ 고려 후기~조선 중기
집필자 조원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고려 후기~조선 중기 - 간행
문화재 지정 일시 2016년 9월 21일연표보기 - 범어사 원효암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유물 일괄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73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범어사 원효암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유물 일괄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
현 소장처 범어사 성보박물관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지도보기
성격 불경
편자 선문염송집 : 진각 혜심, 청진 몽여
간행자 묘법연화경 : 대자암, 중대사, 광흥사, 취암사, 능인암, 귀신사선문염송집 : 대장도감육경합부 : 화암사지장보살본원경 : 벽송암
권책 묘법연화경 : 대자암판 4권 1책, 중대사판 4권 1책, 광흥사판 1권 1책, 취암사판 1권 1책, 능인암판 2권 1책, 귀신사판 1권 1책선문염송집 : 4권 2책육경합부 : 1책지장보살본원경 : 3권 1책
행자 묘법연화경 : 대자암판 10행 20자, 중대사판 10행, 20자, 광흥사판 8행 13자, 취암사판 10행 18자, 능인암판 10행 20자, 귀신사판 8행 13자선문염송집 : 12행 21자육경합부 : 8행 17자지장보살본원경 : 10행 17자
규격 묘법연화경 : 대자암판 26.6㎝[세로]×16㎝[가로], 중대사판 30㎝[세로]×17.7㎝[가로], 광흥사판 33.4㎝[세로]×21.6㎝[가로], 취암사판 35㎝[세로]×21.6㎝[가로], 능인암판 29.9㎝[세로]×18.1㎝[가로], 귀신사판 33.4㎝[세로]×22.4㎝[가로]선문염송집 : 25.8㎝[세로]×16.5㎝[가로]육경합부 : 25.4㎝[세로]×16㎝[가로]
어미 각 경전마다 다름(형태/서지 참조).
권수제 각 경전마다 다름(형태/서지 참조).
판심제 각 경전마다 다름(형태/서지 참조).
문화재 지정 번호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범어사 원효암에서 소장하고 있는 목조관음보살좌상에서 수습한 복장 불교전적(佛敎典籍).

[개설]

범어사 원효암 목조관음보살좌상에서 수습한 복장전적은 총 12건으로 가철(假綴)된 상태의 전적 10책과 칠성도(七星圖) 및 변상도(變相圖) 낙장 2장, 변상도 낙장 2장이다. 이를 종류별로 정리해보면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7종,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 1종, 『육경합부(六經合部)』 1종,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 1종으로 총 10종이다.

[편자/ 간행 경위]

「범어사 원효암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전적」 가운데 『묘법연화경』은 7종인데 그 중 1422년 대자암(大慈庵)에서 간행된 것은 1422년(세종 4) 태종의 4남인 일찍 세상을 떠난 성녕대군(誠寧大君, 1405∼1418)과 태종의 왕비 원경왕후(元敬王后, 1365∼1420)의 명복을 빌기 위해 인순부윤(仁順府尹) 성억(成抑, 1386∼1448)이 그의 사촌인 성달생 형제에게 필사를 청하고 도인 정암(定庵)의 발원으로 간행한 성달생서본계의 원간(原刊) 목판본이다.

1448년 효령대군과 안평대군 관련 목판본은 1448년(세종 30)에 태종의 둘째 아들인 효령대군 이보(孝寧大君 李𥙷, 1396∼1486)와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 이용(安平大君 李瑢, 1418∼1453)이 공덕(功德)과 권선(勸善)을 위해 함께 발원하여 간행한 것으로, 1405년(태종 5) 안심사판(安心寺版)을 번각한 성달생서본계의 목판본이다.

1472년 중대사판(中臺寺版)은 1443년(세종 25)에 불명산(佛明山) 화암사(花岩寺)에서 개간한 것을 번각한 성달생서본계의 목판본이다.

1527년 광흥사판(廣興寺版)은 하가산 광흥사에서 간행하였는데 1470년(성종 원년) 정희왕후 간행본을 번각한 대자본계의 목판본이다.

1572년 취암사판(鷲岩寺版)은 전라도 순창 영취산 취암사에서 천문(天文)의 주관으로 간행한 깁인자본계의 목판본이다.

1604년 능인암판(能仁庵版)은 지리산 쌍계사의 말사인 능인암에서 개간하여 쌍계사로 옮겨 보관한 경판으로 인출하였는데 1445년(세종 27) 도솔산 안심사에서 개간한 것을 번각한 성달생서본계의 목판본이다.

1607년 귀신사판(歸信寺版)은 광해군 원년 전라도 전주 모악산 귀신사에서 간행하였는데 1470년의 정희왕후 간행본을 번각한 대자본계의 목판본이다.

『선문염송집』은 진각 혜심이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원래 선문(禪門)은 불립문자라 하지만 그 근원을 얻으려면 그 흐름을 찾지 않을 수 없으므로 이 책을 지어 오종론도(悟宗論道)의 자료로 삼기 위해 편찬하였던 것이다.

1226년(고종 13)에 간행된 초간본은 현재 남아 있지 않으며, 경판도 몽고와의 전쟁 중에 소실되었다고 전한다. 그 후 1243년(고종 30)에서 1248년(고종 35)까지 대장도감 남해분사에서 재조대장경을 판각할 때 혜심이 입적한 후 수선사 3세 국사가 된 청진국사(淸眞國師) 몽여(夢如, ?~1252)가 1,125칙에 새로이 347칙을 더하여 1,472칙을 수록하여 다시 판각하였다고 전해지지만, 실제 이 재각(再刻)된 고칙은 1,463칙에 그친다. 이 책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판본들이 알려져 있다. 「범어사 원효암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전적」 중 『선문염송집』은 1243년에 새긴 재조대장경 보유판을 후인한 목판본이다.

『육경합부』는 우리나라에서 널리 읽혀진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의 「입불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 『대불정수능엄신주(大佛頂首楞嚴神呪)』, 『불설아미타경(佛說阿彌陀經)』, 『관세음보살예문(觀世音菩薩禮文)』,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 등 6종을 함께 묶어 간행한 불교 경전이다.

「범어사 원효암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전적」 중 『육경합부』는 1462년(세조 8)에 불명산(佛明山) 화암사(花巖寺)에서 간행하였는데, 1424년(세종 6) 도솔산 안심사에서 개판한 것을 번각한 목판본이다.『지장보살본원경』은 지장신앙의 기본 경전으로 예로부터 조상이나 부모를 천도하고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재식법회(齋式法會) 등에서 중요하게 지송(持誦)되어 왔으며, 『지장경(地藏經)』이라 약칭되기도 한다. 단종 원년(1453)간 화암사판의 말미에 있는 풀이에 따르면, ‘지장(地藏)’이란 만물이 의탁하며 모든 법이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경전의 내용은 부처가 도리천(忉利天)에서 어머니 마야부인을 위하여 설법한 것을 모은 것으로, 부처가 지장보살을 불러 갖가지 방편으로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의 육도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모습과, 죄를 짓고 지옥의 온갖 고통을 받고 있는 중생들을 평등하게 제도하여 해탈하게 하려는 지장보살의 큰 서원(誓願)을 담고 있다.

「범어사 원효암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전적」 중 『지장보살본원경』은 1658년(효종 9)에 지리산 벽송암(碧松庵)에서 개판하여 군자사(君子寺)로 옮겨 보관한 경판으로 인출하였는데, 세조 8년(1462)에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개간한 것을 번각한 한문본 목판본이다.

[형태 / 서지]

「범어사 원효암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전적」 『묘법연화경』대자암판은 전체 7권 중 권4-7의 4권 1책 결본이다.

판식(板式)은 권4를 기준으로 사주단변(四周單邊)에 반곽(半郭)의 크기는 21.3×13.5㎝이다. 계선(界線)은 없고 행자수(行字數)는 10행 20자이다. 어미(魚尾)는 없다. 책의 크기는 26.6×16.0㎝이다. 각 권수의 제2행에는 ‘온릉개원련사비구 계환 해(溫陵開元蓮寺比丘 戒環 解)’라고 기록되어 있어 온릉 개원련사의 승려 계환이 주해했음을 알 수 있다. 권수제와 권말제는 ‘묘법연화경(妙法蓮華経)’이고 판심제는 ‘법(法)’이다.

묵흔(墨痕)으로 보아 후인본(後印本)임을 알 수 있다. 원래 5침안 선장본 형태로 장정되었으나, 복장 봉안을 위해 앞 면지는 그대로 둔 채 앞‧뒤표지와 뒷면지가 제거되고 7개의 종이끈[紙繩]으로만 가철된 상태이다. 약간의 침습 흔적이 있지만 보존 상태는 매우 좋은 편이다.

「범어사 원효암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전적」『묘법연화경』 효령대군·안평대군 관련 목판본은 전체 7권 중 변상도 2장만 남아 있다. 원래 5침안 선장본 형태로 장정되었으나 변상도만 따로 떼어 내어 복장 봉안한 것이다. 책의 크기는 28.6×17.4㎝이다.

변상도는 두 판을 이용하여 제1판에는 신장상과 영산회상도의 우측 1/3을, 제2판에는 영산회상도의 좌측 2/3를 새겨 찍었다. 제1판에는 판심을 넣어 신장상과 영산회상도를 구분했다. 판심의 구성은 흑구(黑口)에 상하내향흑어미(上下內向黑魚尾)로 되어 있으며 하어미(下魚尾) 바로 위에는 ‘초귀도(草龜刀)’라고 새겨져 있어서 초귀가 변상도를 새긴 각수(刻手)임을 알 수 있다. 크기는 반곽이 18.6×12.1㎝이고, 광곽을 포함한 외곽은 20.8×13.4㎝이다.

영산회상도는 삼존불좌상을 중심으로 보살, 제자, 신중 등 권속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크기는 도상 전체를 대상으로 내곽은 18.8×38.1㎝이고, 광곽을 포함한 외곽은 20.8×40.0㎝이다.

「범어사 원효암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전적」『묘법연화경』 중대사판은 전체 7권 중 권4-7의 4권 1책 결본이다. 판식은 권4를 기준으로 사주단변에 반곽의 크기는 19.9×13.5㎝이다. 계선은 없고 행자수는 10행 20자이다. 어미는 없다. 책의 크기는 30.0×17.7㎝이다. 권수제와 권말제는 ‘묘법연화경(妙法蓮華経)’이고 판심제는 ‘법(法)’이다. 각 권수의 제2행에는 ‘온릉개원련사비구 계환 해(溫陵開元蓮寺比丘 戒環 解)’라고 기록되어 있어 온릉 개원련사의 승려 계환이 주해했음을 알 수 있다.

묵흔으로 보아 약간 후인본으로 보인다. 원래 포각이 있는 5침안 선장본 형태로 장정되었으나, 복장 봉안을 위해 앞‧뒤 면지는 그대로 둔 채 표지만 제거되고 8개의 종이끈으로만 가철된 상태이다. 위의 포각은 남아 있고 아래 포각은 떨어져 나갔다.

「범어사 원효암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전적」『묘법연화경』 광흥사판은 전체 7권 중 권1의 1권 1책 결본이다. 판식은 사주쌍변에 반곽의 크기는 22.4×15.8㎝이다. 계선이 있으며, 행자수는 8행 13자에 주쌍행이다. 대흑구에 상하내향흑어미이다. 책의 크기는 33.4×21.6㎝이다.

권수제와 권말제는 ‘묘법연화경(妙法蓮華経)’이고 판심제는 ‘법화경(法華經)’이다. 권수제에 이어 제2행에는 ‘요진삼장법사구마라집봉 조역(姚秦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역자가 구마라집임을 알 수 있다.

묵흔으로 보아 후인한 것으로 생각되며, 원래 5침안 선장본 형태로 장정되었으나 복장 봉안을 위해 앞‧뒤 표지와 면지, 그리고 간기, 발원문, 시주질, 공역질 등이 기록된 마지막 1장은 제거되고 2개의 종이끈으로만 가철된 상태이다.

「범어사 원효암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전적」『묘법연화경』 취암사판은 전체 7권 중 권1 1책만 있는 결본이다. 어미와 행자수 등 갑인자본의 기본적인 특징은 유지하고 있으나 글자체는 원간본과 비교했을 때 심하게 변형되어 있다.

판식은 사주단변에 반곽의 크기는 23.1×16.1㎝이다. 계선이 있으며 행자수는 10행 18자이다. 어미는 상하하향유문어미이다. 책의 크기는 35.0×21.6㎝이다.

권수제와 권말제는 ‘묘법연화경(妙法蓮華経)’이고 판심제는 ‘묘법(妙法)이다. 권수의 제2행에는 ‘온릉개원련사비구 계환 해(溫陵開元蓮寺比丘 戒環 解)’라고 기록되어 있어 계환이 주해했음을 알 수 있다. 전반적으로 묵서한 구결(口訣)이 있다.

묵흔으로 보아 약간 후인본으로 보인다. 원래 5침안 선장본 형태로 장정되었으나 복장 봉안을 위해 앞‧뒤 표지와 면지가 제거되고 3개의 종이끈으로만 가철된 상태이다.

「범어사 원효암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전적」 『묘법연화경』 능인암판은 판식은 사주단변에 반곽의 크기는 20.4×13.7㎝이다. 계선은 없고 행자수는 10행 20자이다. 어미는 없다. 책의 크기는 29.9×18.1㎝이다.

권수제와 권말제는 ‘묘법연화경(妙法蓮華経)’이고 판심제는 ‘법(法)’이다. 각 권수의 제2행에는 ‘온릉개원련사비구 계환 해(溫陵開元蓮寺比丘 戒環 解)’라고 기록되어 있어 계환이 주해했음을 알 수 있다. 원래 5침안 선장본 형태로 장정되었으나 복장 봉안을 위해 앞‧뒤 표지와 면지가 제거되고 5개의 종이끈으로만 가철된 상태이다.

「범어사 원효암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전적」 『묘법연화경』 귀신사판은 판식은 사주단변에 반곽의 크기는 22.8×15.9㎝이다. 계선이 있으며 행자수는 8행 13자에 소자쌍행이다. 대흑구에 어미는 상하내향유문어미이다. 책의 크기는 33.4×22.4㎝이다.

권수제와 권말제는 ‘묘법연화경(妙法蓮華経)’이고 판심제는 ‘법(法)’이다. 권수제에 이어 제2행에는 ‘요진삼장법사구마라집봉 조역(姚秦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역자가 구마라집임을 알 수 있다.

원래 5침안 선장본 형태로 장정되었으나 복장 봉안을 위해 앞‧뒤표지와 면지가 제거되고 3개의 종이끈으로만 가철된 상태이다.

후인의 흔적이 비교적 뚜렷하며, 보존상태는 약간의 침습 흔적이 있고 독송으로 인해 서구쪽 하단 부분이 다소 닳아 있다.

「범어사 원효암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전적」 『선문염송집』은 전체 30권 중 권23-26의 4권 2책 결본이다. 판식은 권23을 기준으로 상하단변 좌우쌍변에 반곽의 크기는 17.2×12.5㎝이다. 계선은 없으며, 행자수는 12행 21자에 주쌍행이다. 어미는 상흑어미이다. 책의 크기는 25.8×16.5㎝이다.

권수제와 권말제는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이고 판심제는 ‘염송(拈頌)’이다. 판심 하단 장차표시 아래에 각수명이 새겨져 있는 경우도 있다. 본문에는 묵서 구결이 있다. 앞‧뒤의 표지만 제거되고 네 개의 종이끈으로만 가철된 상태로 복장 봉안되었다. 침습의 흔적이 좀 있긴 하지만 보존 상태는 대체로 좋은 편이다.

「범어사 원효암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전적」 『육경합부』는 1책 완본이다. 판식은 사주단변에 반곽의 크기는 19.7×12.8㎝이다. 계선은 없고 행자수는 8행 17자에 주쌍행이다. 판심은 있으나 어미는 없다. 책의 크기는 25.4×16.0㎝이다.

판심제는 각 경마다 달라서 『금강반야바라밀경』은 ‘금(金)’, 『대방광불화엄경입불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大方廣佛華嚴經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은 ‘행(行)’, 『대불정수능엄신주(大佛頂首楞嚴神呪)』는 ‘정(頂)’, 『불설아미타경(佛說阿彌陀經)』은 ‘아(阿)’, 『관세음보살예문(觀世音菩薩禮文)』은 ‘구(口)’이다.

묵흔으로 보아 약간 후인본으로 보인다. 원래 5침안 선장본 형태로 장정되었으나 복장 봉안을 위해 앞‧뒤의 표지와 면지가 제거되고 5개의 종이끈으로만 가철된 상태이다.

「범어사 원효암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전적」 『지장보살본원경』은 상중하 3권 1책 완본이다. 판식은 사주단변에 반곽의 크기는 22.3×20.6㎝이다. 유계에 행자수는 10행 17자이다. 어미는 상하내향 2엽화문어미이다. 책의 크기는 34.9×24.0㎝이다.

권수제는 장을 달리하지 않고 바로 다음 행에 이어 기록되어 있다. 권수제와 권말제는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経)’이고 판심제는 ‘지(地)’의 변과 나머지 부분을 상하로 배치한 모양인 이다. 예외적인 판심제도 있어 장19의 판심제는 ‘지장’이라는 한글명으로 되어 있다.

원래 5침안 선장본 형태로 장정되었으나 복장 봉안을 위해 앞‧뒤 표지와 면지가 제거되고 두 개의 종이끈으로만 가철된 상태이다. 보존 상태는 매우 좋은 편이다.

[구성 / 내용]

「범어사 원효암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전적」 『묘법연화경』 대자암판은 권4의 권두(卷頭)에는 2장으로 된 칠성도와 변상도가 있는데, 반장(半張)의 칠성도, 반장의 신장상[위태천(韋駄天)] 및 1장의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로 이루어져 있다. 신장상의 우측에는 ‘묘법연화경 변상(妙法蓮華經 變相)’이라는 제명(題名)이 있다.

권4말에는 ‘천태판사행호/회암사주지진산/대선사인철/…(天台判事行乎/檜巖寺住持珍山/大禪師仁哲/ …)’ 등의 시주기(施主記)가 있다. 행호는 태종 연간 대자암에 있었던 천태종(天台宗)의 고승이다.

권미(卷尾)에는 2건의 발문(跋文), 2건의 발원문, 공역(工役)‧시주질, 연화질 등이 있다. 발문은 1442년 2월에 춘정 변계량(春亭 卞季良, 1369∼1430)이 쓴 것과 같은 해 3월에 함허당 기화(涵虛堂 己和, 1376∼1433)가 쓴 것이다. 이어서 도인 정암(道人 定庵)의 발원 증명(發願 證明)이 있다. 그 다음에는 서사자(書寫者)인 총제 성달생(摠制 成達生, 1376∼1444)과 판사 성개(判事 成槪, ?∼1440)의 이름과 시주질이 나온다. 다음으로 원경왕후와 성녕대군의 명복과 상왕(上王), 주상(主上), 공비(恭妃)의 수명장수를 축원하는 발원문이 수록되어 있다. 이어서 대공덕주(大功德主)와 동원시주(同願施主)로 나눠진 시주질과 화주(化主)의 명단이 마지막으로 나타난다.

「범어사 원효암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전적」『묘법연화경』 효령대군·안평대군 관련 목판본의 변상도는 반장의 신장상과 1장 반의 영산회상도로 이루어져 있다. 즉, 두 판을 이용하여 제1판에는 신장상과 영산회상도의 우측 1/3을, 제2판에는 영산회상도의 좌측 2/3를 새겨 찍었다.

이들 도상(圖像)이 새겨진 화면은 금강저(金剛杵)와 법륜(法輪)을 교대로 배치한 광곽(匡郭)으로 둘러져 있는데, 이는 고려 사경변상도(寫經變相圖)의 광곽 모습과 같다.

신장상의 우측에는 ‘묘법연화경 변상(妙法蓮華經 變相)’이라는 제명이 있다. 신장상은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무장이 두 손을 가슴 앞에서 합장을 하고 양팔 위에 가로로 금강저를 얹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는 위태천이다. 조선시대 경판화(經版畵)에 보이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영산회상도의 구도는 삼존불좌상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중앙에는 법상(法床)을 앞에 놓고 대좌에 앉아 설법하는 본존불과 그를 에워싼 8명의 제자와 제석‧범천, 그리고 법상 좌우에 청문보살중 2위가 배치되어 있는데, 대좌 앞에는 구름 위로 용출하는 보탑(寶塔)이 작게 묘사되어 있다. 왼쪽에는 우협시보살을 중심으로 제자 1인, 청문보살중 6위, 2 천왕, 팔부중 4위로 구성된 권속들이 배치되어 있다. 오른쪽에는 좌협시보살을 중심으로 권속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종류, 수, 위치 등이 본존불을 중심으로 정확하게 좌우대칭적인 구도를 이루고 있다.

「범어사 원효암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전적」『묘법연화경』 중대사판은 권5 말에 선사 능여(禪師 能如)를 비롯한 총 62명의 시주질이 있다.

권미(권7 말)에는 “저는 여러 경전의 판을 새김으로서 시방세계에 공덕을 쌓고 사생육도(死生六道)의 모든 중생이 함께 서방정토로 돌아가고, 함께 아미타불을 뵙고, 함께 정법(淨法)을 듣고, 중생들과 동화(同化)하기를 원합니다.” 라는 발원문이 먼저 나오고, 이어서 ‘성화팔년임진[成化八年壬辰(성종 3, 1472)] 사월일(四月日) 전라도진안현성수산중대사 개간(全羅道鎭安縣聖壽山中臺寺 開刊)’이라는 간기(刊記)가 나온다. 이 간기를 통해서 1472년 4월에 전라도 진안현 성수산의 중대사에서 간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 나성군(羅城君) 오자치(吳自緻(治), 1426∼?)를 비롯한 총 48명의 시주질이 있다.

「범어사 원효암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전적」『묘법연화경』 광흥사판은 권두에 2장으로 된 변상도와 종남산 승려 도선(道宣, 596∼667)이 지은 「묘법연화경홍전서(妙法蓮華經弘傳序)」가 있다. 변상도는 영산회상도로서 중앙에 강마촉지인을 취한 석가모니가 그를 향해 청문하는 사리불에게 설법하는 모습이 새겨지고, 오른쪽에는 가섭을 비롯한 5 제자와 4 보살, 범왕과 2 천왕 그리고 4구의 신중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이들 위로 구름을 타고 날아오는 시방제불(十方諸佛)의 모습이 작게 표현되어 있다. 왼쪽에는 오른쪽의 권속들과 대칭되게 배치되어 있고, 왼쪽 여백에는 구름과 몇 송이의 산화(散花)가 표현된 구도이다.

「범어사 원효암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전적」『묘법연화경』 취암사판은 권두에는 2장으로 된 변상도, 「묘법연화경홍전서」 및 정강(靖康) 2년(1127) 3월 중순에 송의 승려 급남(及南)이 지은 「묘법연화경요해서(妙法蓮華経要解序)」가 있다.

변상도는 영산회상도로서 1527년 광흥사판(廣興寺版)과 동일한 구도이다. 변상도는 2매의 판에 새겼는데, 제1판의 광곽 바깥 우측 중앙에는 ‘대주시경현(大施主敬玄)’이라는 시주자 표시가 있어서 경현이 시주하여 새긴 것임을 알 수 있고, 제2판에는 광곽 바깥 우측 상단에 ‘배귀년 작미(裴貴年 芍苿)’이라는 시주자명이 있어서 배귀년과 작미가 시주하여 새긴 것임을 알 수 있다.

권1 말에는 간행참여자의 명단이 있는데, 시주질은 천기 비구(天奇 比丘)를 비롯한 4명의 대시주와 101명의 일반 시주들로 이루어져 있고, 각수는 능월(能月), 희운(熙云), 경인[敬仁(印)], 극림(克林) 등 4인이다. 화주는 천문(天文)이고, 공양주는 계환(戒還)이다.

「범어사 원효암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전적」『묘법연화경』 능인암판은 권두에 2장으로 된 칠성도와 변상도, 「묘법연화경홍전서」및 「묘법연화경요해서(妙法蓮華経要解序)」가 있다.

칠성도와 변상도는 반장의 칠성도, 반장의 신장상[위태천] 및 1장의 영산회상도로 이루어져 있다. 영산회상도는 기원정사에서의 설법장면을 묘사한 것인데, 화면 중심에 향로, 화반 등이 올려진 법상을 앞에 놓고 설법하는 본존이 자리하고, 그 좌우에는 4보살, 10대제자, 사천왕, 팔부중의 권속들이 배치되어 있다. 본존의 법상 아래에는 10대제자 중 해공제일 수보리(須菩提)가 청문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고 그 뒤로 재가중과 비구중이 자리하여 설법을 듣는 모습이다. 원래 이 도상은 『묘법연화경』의 도상이 아니라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의 도상을 『묘법연화경』 변상으로 차용한 것이다. 신장상의 우측에는 ‘묘법연화경 변상(妙法蓮華經 變相)’이라는 제명이 있다. 칠성도와 변상도는 2매의 판에 새겼으며 각 판의 광곽 바깥 우측 하단에는 시주자명이 나타난다. 칠성도와 신장상을 새긴 제1판의 시주자명은 ‘통정대부 양언중 양주(通政大夫 梁彦重 兩主)’로 되어 있고, 제2판은 ‘통정대부 양언장 양주(通政大夫 梁彦張 兩位)’로 되어 있다. 양언중과 양언장은 형제로 추측되며, 양언장 부부를 ‘양위(兩位)’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양언장이 양언중의 형이거나, 양언중이 죽은 양언장 부부 명의로 대신 시주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처럼 광곽 바깥에 새겨진 시주자명들은 이후 권두 부분과 본문 부분 전체에 걸쳐 많이 나타난다.

「범어사 원효암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전적」 『묘법연화경』 귀신사판은 권두에 2장으로 된 변상도, 「묘법연화경홍전서」, 「묘법연화경요해서」 및 계환해(戒環解)가 있다.

변상도는 영산회상도로서 1527년 광흥사판과 동일한 구도이다. 변상도는 2매의 판에 새겼는데, 제1판의 광곽 안쪽 우측 하단에는 ‘대시주 오석천 양주(大施主 吳石千 兩主)’라는 시주자 표시가 있고, 제2판에는 광곽 바깥 우측 하단에 ‘이어질지양주(李於叱之兩主)’, 광곽 안쪽 좌측 하단에는 ‘이인손양주(李仁孫兩主)’라는 시주자명이 각각 새겨져 있다. 그 중 ‘이인손양주’는 다음 장인 「묘법연화경홍전서」의 광곽 바깥 하단에도 새겨져 있다.

시주질과 간기가 있는 마지막 장을 포함하여 권말 3장이 찢겨져 나갔는데, 그 중 제일 마지막 1장은 함께 수습되었다. 따로 수습된 제일 마지막 장에는 권말의 권말제 앞에 이연수(李連壽)를 비롯한 11명의 시주질이 있고, 권말제 다음에는 ‘만력삼십칠년을유[萬曆三十七年己酉(광해군 원년, 1609)] 이월일(二月日) 전라도전주귀신사개간(全羅道全州歸信寺開刊)’이라는 간기가 있어서 1609년 2월에 귀신사에서 개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앞의 장들과는 달리 장차표시도 없고 판식도 다르지만 이는 새 간기를 새기기 위하여 번각하지 않고 따로 새기면서 생긴 현상으로 생각된다.

「범어사 원효암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전적」 『선문염송집』은 각 권마다 몇 개의 고칙(古則)을 위로부터 두 자 공간을 띄우고 셋째 자부터 써서 염송의 본문과 구별하고, 그 고칙에 대한 염송을 첫째 자부터 쓰는 형식을 취하였다. 내용은 제1권에는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에 대한 화제(話題) 30개‚ 제2권에는 석가모니 직계제자들의 화제 41개‚ 제3권에는 여러 불경에 실린 화제와 조사에 대한 화제 32개‚ 제4권에는 제6조 혜능(慧能, 638-713)부터 혜충국사(慧忠國師, ?-775)까지의 화제 33개를 수록하였고‚ 제5권부터는 중국 선종의 5종7가(五宗七家)의 고승들이 남긴 법문 가운데 화제가 될 만한 것들을 뽑아 고칙으로 제시하고‚ 그 고칙에 대한 여러 승려의 평창(評唱)['염']‚ 운문으로 창송한 '송(頌)'을 제시하는 한편 고칙을 이용한 설법[상당법어(上堂法語)]도 실었다. 또한 고칙 속의 사건을 들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징(徵)'‚ 고칙 속에서 대답이 막힌 쪽을 대신해서 한마디 하는 '대(代)'‚ 고칙 속 문답에서 제시된 대답과는 다른 측면에서 자기의 견해를 제시하는 '별(別)' 등이 망라되어 있다. 그 가운데 '염'과 '송'이 중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염송'을 책이름에 올린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선문의 기본 학습서로 채택되어서 선종 승려들의 필독서였고, 선종선(禪宗選)에서도 이 책에 대한 공부는 반드시 점검하도록 되어 있었으니‚ 선종 글쓰기의 기본 텍스트로서 지속적인 중요성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범어사 원효암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전적」 『육경합부』는 권두에 2장으로 된 변상도가 있다. 변상도는 기원정사에서의 설법장면을 묘사한 영산회상도이다. 2매의 판에 새겼으며 제1판 우측에는 ‘금강반야바라밀경 변상(金剛般若波羅密經 變相)’이라는 제명이 있다. 제1판의 광곽 안쪽 우측 하단에는 ‘성오도(性悟刀)’라는 각수 사항이, 좌측 하단에는 ‘시주 사직이보규 구씨(施主 司直李保珪 具氏)’라는 시주자명과 ‘화주 성회 선사각주(化主 性會 禪師覺珠)’라는 화주명(化主名)이 새겨져 있어서 이 변상도는 사직(司直) 이보규(李保珪)와 능성 구씨(綾城 具氏)의 시주로 성오(性悟)가 새긴 것임을 알 수 있다.

본문에 6경을 배치하는 방식은 전래본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 책의 경우에는 『묘법연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妙法蓮華經觀世音菩薩普門品)』은 제외되었고 나머지 5경이 다음과 같은 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맨 앞에 배치된 『금강반야바라밀경』은 ‘금강경계청(金剛經啓請)’,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 ‘청팔금강(請八金剛)’, ‘청사보살(請四菩薩)’, ‘발원문(發願文)’, ‘운하범(云何梵)’이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권수제가 나온다. 이어 제2행에는 ‘요진삼장법사구마라집봉 조역(姚秦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역자가 구마라집임을 알 수 있다. 본문 32분(分)이 끝난 다음에는 권말제에 이어 ‘반야무진장진언(般若無盡藏眞言)’, ‘금강심진언(金剛心眞言)‘, ’보궐진언(補闕眞言)’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발원문과 ‘전라도고산지화암사개판(全羅道高山地花岩寺開板)’이라는 간기가 나온다. 이 간기를 통해서 고산의 화암사에서 개판하였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간행을 주도한 서원군 한계미(西院君 韓繼美, 1421∼1471)를 비롯한 한계희(韓繼禧, 1423∼1482), 한계선(韓繼善, 1426∼1487), 한계순(韓繼純, 1431∼1486) 형제들의 이름이 간행참여자의 서두에 나란히 기재되어 있다. 다음 면에는 보정(宝正)을 비롯한 94명의 시주자명을 담은 시주질이 나온다.

다음은 『대방광불화엄경입불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이다. 권수제에 이어 ‘계빈국삼장반야봉 조역(罽賓國三藏般若奉 詔譯)’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역자가 반야임을 알 수 있다. ‘대방광불화엄경보현행원품’으로 줄인 권말제 다음에는 ‘속질만보현다라니(速疾滿普賢陀羅尼)’, ‘보현보살멸죄주(普賢菩薩滅罪呪)’, ‘보현보살옹호수지진언(普賢菩薩擁護受持眞言)’이 마지막으로 나온다.

다음은 『대불정수능엄신주』이다. 본문이 끝난 뒤 진언패(眞言牌)가 그려져 있고 권말제가 나온다.

다음은 『불설아미타경』이다. 권수제 다음에 ‘요진삼장법사구마라집봉 조역(姚秦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역자가 구마라집임을 알 수 있다. 권말제 다음에는 ‘무량수불설왕생정토주(無量壽佛說往生淨土呪)’, ‘결정왕생정토진언(決定往生淨土眞言)’, ‘상품상생진언(上品上生眞言)’, ‘아미타불심주(阿弥陀佛心呪)’, ‘아미타불심중심주(阿彌陀佛心中心呪)’, ‘무량수여래심주(無量壽如來心呪)’, ‘무량수여래근본인(無量壽如來根本印)’이 차례대로 나온다. 마지막에는 시주질이 있는데 모두 38명이다.

마지막으로 『관세음보살예문』이 배치되었다. 권말제 다음에는 세조의 장수와 세종이 불지(佛智)를 증득(證得)하기를 바라는 발원과 돌아가신 부모님들이 각안(覺岸)에 초등(超登)하기를 바라고 이 『육경합부』를 수지독송하는 자와 견문수희하는 자들 모두 보리를 증득하기를 바란다는 발원문이 있다. 발원문 다음에는 발문을 쓴 성달생의 관직과 성명이 있다. 그리고 성달생의 관직과 성명을 적은 마지막 줄의 우측 여백에는 ‘천순임오[天順壬午(세조 7, 1462)] 칠월일중간(七月日重刻)’이라는 간기가 있어서 1462년 7월에 중각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기타 좌우 여백에는 공역질, 시주질, 연화질이 있어서 연판(鍊板)은 호연(胡衍)과 성민(性敏)이 담당하였고, 판수(板手)는 성오(性悟)와 민은(敏訔), 공양주는 옥명(玉明), 대시주 김광대(金光大), 화주는 각주(覺珠)와 성회(性會)였음을 알 수 있다.

「범어사 원효암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전적」 『지장보살본원경』은 권두에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개경게(開經偈)’, ‘개법장진언(開法藏眞言)이 있다.

권수제 다음 행에는 ‘삼장법사 법등역(三藏法師 法燈譯)’이라는 역자표시가 있어서 법등이 번역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각 권의 권말제 다음에는 모두 석음(釋音)을 두었다. 하어미(下魚尾)에는 한글로 음각된 각수명이 자주 보이고, 광곽 바깥에는 시주자명이 새겨진 경우도 있다.

권미에는 발원문, 후발(後跋), 간행참여자들의 명단, 간기 등이 있다. 발원문은 태종을 비롯한 왕가의 사람들과 돌아가신 부모님, 그 외 인물들의 극락왕생과 복수무강(福壽無疆)을 빌고 있는데, 그 내용으로 보아 김구덕(金九德, ?∼1428)의 딸인 태종 때의 명빈(明嬪, ?∼1479)이 왕실의 여러 사람과 더불어 발원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발문은 저본(底本)에서의 기록이며 실제 저본이 되는 간경도감판(刊經都監版)의 5행 17자 중 5행씩 2면을 합하여 선장본으로 번각, 간행, 제본할 때 후발을 다시 붙인 것이다.

후발은 현세에서는 부모가 무병장수하기를 빌고 조고(祖考)와 법계(法界)의 모든 존재들이 고뇌에서 벗어나 극락왕생하기를 바라며, 이 『지장보살본원경』을 간행하여 널리 유통시켜서 여러 단월(檀越)과 함께 깨달음의 길에 이르고자 하는 발원을 담고 있다.

간행은 선교도총섭(禪敎都摠攝) 국일도대사(國一都大師) 각성(覺性, 1575∼1660)이 주관하였으며, 교정과 후발은 학정(學淨)과 현찬(玄贊)이, 간선(幹善)은 청변(淸辯)이 맡았다. 그리고 일반인으로는 박윤남(朴允南)과 장난매(張蘭梅)를 포함한 5인이, 사중(寺衆)에서는 학성(學性)과 응잠(應岑)을 포함한 45인이 참여하였다. 연판은 영안(灵眼)이, 각자(刻字)는 신규(信圭), 희간(熙侃), 법견(法堅), 일행(日行), 인휘(印輝), 정탄(淨坦)이 맡았으며, 정탄은 인권(引勸)도 겸하였다.

간기는 ‘하원갑무술[下元甲戊戌(효종 9, 1658)] 계하일(季夏日) 경상도함양군지리산벽송암개판(慶尙道咸陽郡智異山碧松庵開板) 이진어군자사(移鎭於君子寺)’로 표기되어 있어서 1658년에 경상도 함양군 지리산 벽송암에서 경판을 새기고 군자사로 옮겨 보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범어사 원효암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전적」은 모두 10종의 전적이 있는데, 이것을 시기적으로 살펴보면 13세기 고려시대 간본이 1종, 15세기와 16세기 조선 전기 간본이 각각 4종과 2종, 17세기 조선 후기 간본이 3종이다. 그리고 1448년 중대사판 · 1604년 능인암판 『묘법연화경』과 『지장보살본원경』을 제외하고는 모두 후인본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1674년에 불상을 조성하면서 봉안한 것들이기 때문에 모두 늦어도 그 이전에 인출된 것들이다.

이 전적은 복장을 위해 표지가 제거되고 일부는 낙장 상태로 봉안되어서 대체로 상태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이러한 현상은 복장전적의 경우 흔히 보이는 모습이다. 이 가운데 1472년 중대사판과 1609년 귀신사판 『묘법연화경』은 비교적 전래본이 드문 편이고, 특히 1572년 취암사판 『묘법연화경』과 『지장보살본원경』은 전래가 매우 드문 희귀본으로서 서지학, 인쇄사, 불교학 등 여러 분야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2016년 9월 21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7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7.11.21 인명 한자 수정 李補 -> 李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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