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4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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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中洞溫泉-新安朱氏世居地 |
영어의미역 | Residential Place of Sinan Ju Clan in Jung-dong Oncheon Village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 온천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주영택 |
[정의]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에 있는 신안 주씨 세거지.
[개설]
신안 주씨(新安朱氏) 시조는 중국 송(宋)나라 신안현 사람인 주잠(朱潛)으로, 고려 고종(高宗) 때 우리나라로 건너와 전라남도 나주(羅州)에 정착한 후 후손들이 계대를 이어 오고 있다. 주잠은 주자(朱子)의 증손자로 송나라 사직이 위태롭게 되자 아들 주여경(朱餘慶)을 데리고 바다를 건너 망명해 와 나주에 자리 잡았다. 후에 원(元)나라에서 송의 유민을 압송하려 했을 때 이름을 주적덕(朱積德)이라 고치고 능성 고정리에 은거하였다.
주여경은 고종 때 은사과(恩謝科)에 올랐고, 그 아들 주열(朱悅)이 또 문과에 올랐다. 주열에게는 주인장(朱印長), 주인원(朱印遠), 주인환(朱印還) 등 3형제가 있었는데, 조선 시대 들어 이들 3형제의 후손들이 능성(綾城), 웅천(熊川), 전주(全州)로 각각 갈렸다. 신안 주씨 웅천파조는 주문익(朱文翊)이며, 본관은 충청남도 공주다. 신안 주씨 웅천파 후손들이 남하하여 경주에 세거하면서 신안 주씨 동부령공파가 형성되었다.
[명칭 유래]
중동 온천 마을은 해운대 구남벌에서 온천이 솟아나며 형성된 마을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해운대 온천은 본래 구남벌에서 솟았다 하여 구남 온천(龜南溫泉)으로 불렀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주응택(朱應澤)[27세]이 경주에서 분거를 위해 해안을 따라 남하하여 서생, 동백, 월내에서 살다가 1850년경 해운대구 중동 온천 마을에 정착하여 입향하였다. 동래부 동하면 고문서(東萊府東下面古文書)에 보면, 장산 마고당이 비가 새고 벽이 허물어지자 1924년 「장산신당 중건 모연문(萇山神堂重建募緣文)」을 발의하여 중건 모금을 하였다. 「장산신당 찬조록(萇山神堂贊助錄)」을 보면 중건 모금에 동참한 해운대 주민이 178명인데, 그 가운데 주복수(朱卜守)[29세]가 들어가 있다.
[자연 환경]
중동 온천 마을 동쪽 달맞이 고개를 중심으로 산지가 발달하였으며 전체적으로 북서쪽으로 열린 지형이다. 달맞이 고개는 미포에서 청사포로 넘어가는 와우산 중턱에 있는 고개로 주변의 바다 풍광이 매우 뛰어나다. 달맞이 고개 쪽 해안은 암석 해안이다. 청사포에는 망부암[고기잡이 나간 남편을 바위에서 기다리다 죽은 여인의 이야기가 전함]이 있다. 서쪽 해안에는 해운대 해수욕장이 있다.
[현황]
2013년 현재 중동 온천 마을에는 신안 주씨 6가구가 살고 있으며, 부산과 경상남도 양산 일대에 10여 가구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