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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법동 창원 황씨 세거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7454
한자 掛法洞昌原黃氏世居地
영어의미역 Gwaebeop-dong Changwon Hwang Clan Hometow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사상구 괘법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영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거지
가구수 11가구
세거지 괘법동 창원 황씨 세거지 - 부산광역시 사상구 괘법동

[정의]

부산광역시 사상구 괘법동에 있는 창원 황씨 세거지.

[개설]

사상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가문인 창원 황씨(昌原黃氏)는 각기 다른 문중이 이곳에 자리 잡은 것으로 나타난다. 사상 지역에 거주한 창원 황씨에 관한 기록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는 회산 부원군(檜山府院君) 황상(黃裳)의 5세손 황복(黃福)의 여러 대 묘소가 사상 대천곡과 죽전곡에 있었으나, 15세기의 일로 그 후손은 찾을 수 없다. 둘째는 선무 원종공신 황류원(黃流元)이 김해(金海)에서 감동[현 사상구 삼락동]에 입향하여 임진왜란 때 수군으로 전공을 세우고 녹훈된 그의 후손들이 있다.

셋째는 주을산 서쪽 기슭 언덕에 있는 황윤서(黃潤瑞)의 묘갈명에 생원 황흡(黃洽)이 청도 훈도를 지내고 1624년에 사상면 괘내리로 이거하였지만, 창원 황씨 괘법동 입향조로는 황흡의 증손인 황영숙(黃永淑)[1695~1782]으로 기록되어 있고 묘소는 백양산 중록 괘내산에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황영숙의 묘소만이 남아 있고, 황영숙을 제외한 인물의 묘소나 행적이 남아 있지 않아 입향조가 되지는 못한다.

[명칭 유래]

괘법동괘내리(掛乃里)창법리(昌法里)를 합치면서 생겨난 지명이다. 괘내리는 마을 앞 나루터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는 갯가의 동네였다. 물이 괴어 있는 동네라는 뜻에서 ‘괸내’라 부르던 것이 괘내가 되었다고 한다. 또는 일찍이 사상 일대의 중심 기능을 하여 깃대를 걸던 냇가의 동네라고 뜻에서 ‘걸 괘(掛)’에 ‘내(乃)’ 자를 써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창법리는 조선 후기 고지도에 나타나는 나루터 지명인 창진리(倉津里)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현재 사상구 괘법동에 세거하는 가문은 동래 부사를 역임한 황일하(黃一夏)[1644~1726, 동래 향교에 영세불망비가 있음]의 아들인 황유숙(黃有淑)[일명 황영숙]의 후손이다. 1937년 편찬된 『동래군지(東萊郡誌)』 성씨조에 의하면, 황유숙은 “동래 부사 황일하의 아들로 유애지향(遺愛之鄕)[조상의 애정이 남아 있는 고장]이기에 거주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황유숙의 후손 중에 황인담(黃仁潭)과 황로연(黃魯淵)[황기륜(黃基崙)의 손자]은 조선 시대 동래 지역에서 배출된 무과 급제자 11명 가운데 두 사람이다. 황유숙의 손자인 황인담은 무과에 급제하여 사과(司果) 벼슬을 역임하였다. 황기륜[황일하의 현손]은 한성 우윤(漢城右尹)을 지냈는데, 서울에서 왔다. 또 형조 좌랑 황종하(黃鍾河), 무과에 급제한 황로연, 황준수(黃俊秀), 황기수(黃紀秀)[황로연의 아들], 황학수(黃鶴秀), 황인수(黃麟秀) 등이 기록되어 있다.

[자연 환경]

괘법동 동쪽으로는 백양산 줄기가 이어지고, 서쪽으로는 낙동강 사상 공단 유수로에 접한다. 동쪽 백양산 골짜기에서 괘내천이 서쪽으로 흘러 낙동강에 흘러든다. 시가지는 백양산 기슭에서 낙동강변 평지 쪽으로 발달해 있다.

[현황]

괘법동의 황씨 자손들은 19~20세기에 번창하여 사상 지역의 대종을 이룬 괘법동의 대표적인 향반(鄕班)이었다. 1904년 작성된 『경상남도 동래군 가호안(慶尙南道東萊郡家戶案)』에는 창법리에 7가구, 1936년 발행된 『조선의 성(朝鮮の姓)』에는 괘법리에 20가구, 부산의 동족 마을을 조사한 보고서에는 1971년 48가구, 1976년 48가구, 1990년 6월 15가구가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2013년 현재 사상구 괘법동에 11가구가 거주하고, 부산 전역에서 30여 가구의 후손이 묘사에 참여하고 있다. 효자 황택용(黃澤龍)을 기념한 효자비(孝子碑)가 사상구 괘법동 산28-6번지에 있고, 이곳의 옛 지명인 창법을 따라 창법계로 불리는 동계(洞稧)에는 황씨를 비롯한 토박이 80가구가 가입하여 400여 년간 동계를 운영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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