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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라동 김녕 김씨 세거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7451
한자 毛羅洞金寧金氏世居地
영어의미역 Mora-dong Gimnyeong Gim Clan Hometow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사상구 모라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영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거지
가구수 약 20가구
세거지 모라동 김녕 김씨 세거지 - 부산광역시 사상구 모라동

[정의]

부산광역시 사상구 모라동에 있는 김녕 김씨 세거지.

[명칭 유래]

나이 든 어른들에 의하면, 모라동(毛羅洞)의 ‘모라’를 ‘모란’으로 변음하여 불렀으며, 옛날에는 모라동의 뒷산 기슭에 모란[牧丹] 꽃이 많이 피어 동리 이름을 모란이라 불렀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한편 ‘모라’라는 말은 ‘마을’이라는 우리말의 고대어(古代語)라는 설도 있다.

[형성 및 변천]

모라동 김녕 김씨 세거지(毛羅洞金寧金氏世居地)는 익하공파의 후손인 입향조 유생(儒生) 김의련(金儀連)의 후손들이 세거하며 마을을 이루고 있다. 김의련은 원래 경상남도 밀양에 거주하다가, 임진왜란 이전에 모라동으로 옮겨 온 것으로 「사상구동계(沙上舊洞稧)」에 실려 있다.

입향조 김의련의 묘소는 사상구 덕포동 장아산 기슭 죽전곡 동북쪽 언덕에 있으며, 묘지명이 자연석에 새겨져 있다. 비문에는 “1621년(광해군 13)에 김의련이 유생 김효생(金孝生)과 더불어 연명으로 상소하기를 왕을 당쟁 속에 몰아넣어 폭군으로 만든 이이첨(李爾瞻), 박정길(朴定吉), 한찬남(韓纘男) 등을 처벌하라고 하였다가 도리어 동래로 귀양 오고야 말았다. 인조(仁祖) 계해반정(癸亥反政) 이후 김효생은 크게 등용되었으나 김의련은 귀양 와서 동래에서 죽어 장사 지냈고, 이로 인해 홀로 조정으로부터 포장(襃獎)의 은전을 입지 못한 것이 애석하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자연 환경]

모라동은 동쪽으로 백양산[운수산이라고도 함]에서 이어지는 산줄기가 있으며, 서쪽으로 낙동강 사상 공단 유수로에 접해 있고, 서쪽의 저지대에 시가지가 발달하였다. 동쪽 백양산에서 발원한 운수천은 서쪽의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현황]

김녕 김씨(金寧金氏)는 사상 지역에서 이름난 집안으로, 후손들은 대대로 모라동에 살며 14대를 이어 오고 있다. 김녕 김씨 가문의 거주 기록은 1904년 작성된 『경상남도 동래군 가호안(慶尙南道東萊郡家戶案)』모라동 58가구 가운데 김씨가 18가구, 1936년에 발행된 『조선의 성(朝鮮の姓)』에 22가구가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2013년 현재 사상구에 약 50가구가 살며, 모라동에 약 20가구의 후손이 거주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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