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4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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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巨堤洞南原梁氏世居地 |
영어의미역 | Residential place of Namwon Yang clan in Geoje-dong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양흥숙 |
[정의]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동에 있는 남원 양씨 세거지.
[개설]
남원 양씨(南原梁氏)는 본관이 전라북도 남원인 만큼 세거지는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지역에 많다. 부산에서는 현재 해운대구 반송동·반여동, 사상구 주례동, 연제구 거제동 등지에 모여 산다. 거제동, 특히 거제 2동에 사는 남원 양씨는 1세 병부공(兵部公) 양능양(梁能讓), 13세 문양공(文襄公) 양성지(梁誠之), 16세 문양공의 증손 사천공(泗川公) 양윤신(梁允信), 25세 양의하(梁義厦)의 직계 후손들로, 남원 양씨 거제문회(巨堤門會)라고 불리며, 남원 양씨 사천공파 또는 남원 양씨 극례공파(克禮公派)라고도 불린다. 현재 37세까지 거주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어, 거제 2동은 12대 이상의 사람들이 살아온 오래된 세거지 가운데 하나다.
[명칭 유래]
‘거제(巨堤)’라는 지명은 이곳에 축조된 큰 제방에서 비롯되었다. 조선 시대 이곳의 지명은 거벌리(居伐里)였다. 거벌(巨伐)로도 표기되었으며, ‘큰 벌’을 뜻하는 평야를 의미한다. 지금의 거제동과 연산동 일대에 펼쳐 있는 넓은 들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상습 침수 지역이었던 이곳에 제방을 쌓으면서 붙여진 이름으로 전한다.
[형성 및 변천]
남원 양씨 거제문회 입향조는 18세기 중엽 이곳에 들어온 양의하(梁義厦)다. 『양씨 대동보(梁氏大同譜)』에는 양의하의 거주지를 ‘부산시 동래구 거제동’으로 적고 있다. 또한 거제문회에서 전해 내려오는 고문서 역시 양의하의 것이 가장 빠르다. 1783년(정조 7) 3월에 발급된 준호구(准戶口)[호적 등본 또는 주민 등록 등본과 같은 고문서]는 발급 대상자가 양의하이며, 당시 거주지는 동래부 서면 거벌리 9통 5호[준호구상 표기]였다. 거벌리는 현재 거제동에 해당한다.
이 준호구에 따르면 1783년 당시 양의하의 나이는 75세였다. 남아 있는 준호구 4점에는 양의하는 모두 기축생(己丑生)[1709]으로 되어 있고, 『양씨 대동보』에는 계사생(癸巳生)[1713]으로 되어 있다. 양의하의 생몰 연대로 남원 양씨 거제문회의 세거 연대를 추정하면 250년 이상이다. 현재 거제 2동에 세거하는 남원 양씨는 양의하의 후손들이다. 양의하의 아들은 양처룡(梁處龍), 양처구(梁處龜), 양처대(梁處大), 양처린(梁處麟)인데, 이 4형제 직계 후손 대부분이 흩어지지 않고 거제동에 대대로 세거하면서 오늘날 거제문회를 이루고 있다.
[자연 환경]
거제동 서쪽으로 금정봉[399m]과 금용산[150m], 화지산[200m]을 잇는 산지가 에워싸고 있다. 산록에서 발원한 소하천들이 동쪽으로 흘러 온천천으로 유입하며 유역에 넓은 평지를 이룬다. 대부분 주거지로 이용되고 있다.
[현황]
2014년 현재 거제동에는 남원 양씨 20여 가구가 모여 산다. 특히 거제 2동은 법원, 검찰청,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 부산의료원 등이 들어서면서 급속히 개발되어 세거지 지형이 많이 변하고 있다. 도로가 넓어지고 건물이 들어서면서 주민의 이주가 늘어나고, 또한 후손의 분가 및 이주도 증가하여 거제 2동에 세거하는 인원은 점차 감소하고 있다.
거제문회는 1년에 두 차례 만덕 재실에서 시제를 거행한다. 음력 10월 10일에는 21세 양극례(梁克禮)의 제사를 올리는데, 이때는 주례동과 가야동의 남원 양씨 후손이 함께 모여 제사를 올린다. 음력 9월 9일에는 거제문회만 모여서 양의하의 아버지 양수정(梁秀貞), 양의하, 양의하의 네 아들 제사를 함께 올린다. 또한 추석 전 일요일에는 양극례 묘소의 벌초를, 음력 10월 첫 일요일에는 양수정 묘소의 벌초를 거행하고 있다. 남원 양씨 거제문회에서 소장하고 있는 준호구 등 57점 등은 2000년에 공개하였는데, 그 후 수해로 일부 손실된 상태이다.
현재 거제동에서는 남원 양씨 외에 문씨(文氏), 윤씨(尹氏), 이씨(李氏), 송씨(宋氏) 등의 성씨가 세거하고 있다. 이 5개 성씨는 현재 ‘거평씨족회(巨坪氏族會)’라는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다. 거평씨족회는 「농지개혁법」[1949년]이 발효되기 20~30년 전에 마을 재산을 확보하고 관리하기 위하여 만들었다고 전한다. 오늘날 거평씨족회는 매년 정월 대보름날 각 단체 기관장과 마을 사람들을 초대하여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당산제[거제동 800번지]를 주최하여 거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