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2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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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井寺木造阿彌陀如來坐像-腹藏遺物 |
영어의미역 | Relics from Seated Wooden Amitabha Statue at Geumjeongsa Temple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우장춘로 157-59[온천동 28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재혁 |
[정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금정사에 있는 조선 후기 아미타여래상과 복장 유물.
[개설]
금정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金井寺木造阿彌陀如來坐像)의 조성 발원문에 따르면 1667년(현종 8) 조성하여 전라도 고산현 대둔산 용문사에 봉안하였던 것으로, 수화승(首畵僧) 혜희(慧熙)를 중심으로 모두 7명이 불상 조성에 참여하였다. 1920년경에 부산 금정사로 옮겨왔다고 한다. 현재 금정사 대웅전의 주존불이며 왼쪽에 관음과 옹른쪽에 세지(勢至)를 협시로 하는 아미타 삼존이 형태로 봉안되어 있다. 양측 보살상은 본존에 비해 크기도 작고 신체 비례, 인상, 법의 형식 등 양식적으로 차이가 크며 이후에 제작된 상들이다. 2009년 개금을 위해 불상의 내부 조사를 실시하였는데 복장에서 상의 조성 연대, 봉안처 등이 적힌 조성 발원문과 후령통(喉鈴筒), 7종 8점의 경전류 등이 발견되었다. 2012년 10월 30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15호로 지정되었으며,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금정사에서 소유하여 관리하고 있다.
[형태]
금정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높이 107.5cm로, 상체를 앞으로 약간 숙여 아래를 굽어보는 듯한 자세이며, 신체에 비해 머리가 크고 사각형의 상반신에 비해 무릎 너비가 넓어 안정감이 있다. 수인(手印)은 아미타인의 하품 중생인(下品中生印)으로, 오른손은 어깨까지 들고 왼손은 무릎 위에 살짝 들어 양손 모두 엄지와 중지를 맞대었다. 복장물은 조성 발원문, 후령통(候鈴筒), 7종 8점의 경전류와 목판으로 찍어 낸 수백 장의 다라니가 확인되었다.
머리와 육계의 불분명한 경계에는 반원형의 중간 계주, 정상부에는 정상 계주를 각각 두었다. 머리에는 길쭉하고 뾰족해 보이는 나발을 촘촘하게 붙였다. 얼굴은 크고 넓적해 보이며 얼굴 폭에 비해 얼굴 길이가 짦은 데서 오는 시각적 효과로 생각된다. 양 뺨과 턱은 양감이 있으며, 정돈된 이목구비와 희미하게 드러나는 부드러운 미소는 단정하면서도 자비로운 인상을 준다.
방형의 상반신은 어깨가 둥글다. 오른쪽 어깨에는 내의를 입고 그 위에 대의(大依)를 살짝 걸쳐 돌려 입었는데 두께도 얇고 부드럽다. 또 오른쪽의 대의는 끝단 한 자락만 둥글게 강조하고, 왼쪽 어깨의 대의는 큼직한 주름으로 간략하지만 절제미가 돋보인다. 특히 하반신의 옷자락은 조각승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데 옷 주름이 날카롭고 힘이 있으며, 허벅지 측면에는 바닥까지 흘러내린 옷자락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왼쪽에서 흘러내린 다리 위의 옷자락은 다른 부분에 비해 두껍고 무거워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불상 및 복장물의 전체적인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복장유물(腹藏遺物)을 넣었던 불상 내부는 속이 매끈하게 손질되어 다라니와 같은 인쇄물을 붙여 정성껏 손질하였다.
[특징]
금정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의 넙적한 얼굴에 군더더기 없는 단정한 이목구비, 강건해 보이는 인상, 날카로우면서도 힘이 있는 옷주름 처리 등은 혜희가 조성한 불상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그가 조성한 불상은 김제 금산사 대장전(大藏展)[1650년], 갑사(甲寺) 보장각[1650년경], 법주사 관음전[1655년],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우아동 1가 일출암[1677년]에 남아 있다. 그 외에도 숭림사 성불암 목조 불상[1640년], 완주 송광사 소조 삼존불 좌상[1641년]의 조성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현존 작품을 통해 혜희는 전라도와 충청도를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1640년대부터 1670까지 왕성한 활동을 했다. 금정사 대웅전 아미타여래 좌상은 혜희의 현존 작품 중 가장 완숙기의 작품으로 다른 작품에서 볼 수 없는 섬세함과 부드러움이 드러난다
전주 일출암 목조약사여래좌상과 함께 석가여래의 좌·우 협시로 봉안되었던 것으로 추정되어 용문사에 봉안될 당시의 모습인 삼세불(三世佛)을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다.[의의와 평가]
금정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조각승 혜희의 후반기 작품이다. 혜희 작품의 양식적 추이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며, 후령통과 그 속에 봉안된 보기 드문 동(銅)으로 만든 오보병(五寶甁), 복장 발원문 등은 17세기 불상 복장물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복장 유물 중 경전류도 당시의 훈민정음 표기법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국어사적인 면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동일본을 찾을 수 없어 소중하게 보존하면서 앞으로 연구할 가치가 있다. 다라니도 판각 연대를 알 수 있어서 조선 시대 만다라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는 등 복장 유물 역시 불상의 복장물 연구 및 국어사, 서지학, 불교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