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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7095
한자 洛東江-背景-現代文學
영어의미역 The Modern Literatures set in Nakdong River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문재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장소 낙동강 - 부산광역시 일대

[정의]

부산 지역에 있는 낙동강을 배경으로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이루어진 문학 활동.

[개설]

태백산 황지에서 비롯된 낙동강의 큰 줄기는 경상북도 안동, 고령을 거쳐 경상남도에 이른다. 그런 다음 합천, 창녕을 거치면서 황강을 더하여 의령 동진강에 이르고, 동쪽으로 꺾인 뒤 삼랑진에 이르러 밀양 의천강을 더한다. 다시 남쪽으로 흐르다 원동 월당강을 더하여 김해에 이른 뒤, 두 갈래로 나뉘어 마침내 바다로 든다. 이은상(李殷相)[1903~1982]의 시 「낙동강」[1954]에서 묘사한 “낙동강 굽이굽이 일천삼백 리”처럼 낙동강은 압록강, 두만강의 뒤를 이을 정도의 긴 길이다. 이러한 낙동강은 유유히 흐르면서 곳곳에서 특색 있는 풍토를 마련하면서 예부터 생태, 문화 중심이나 뱃길, 또는 경상도 좌우를 가르는 역사 경계로서 맡은 바 몫이 컸다. 그 아래쪽만 하더라도 밀양, 김해, 양산, 부산에 걸치는 넓은 지역을 아우르는 용수원일 뿐만 아니라, 경관과 삶터를 이끌어 온 중요한 ‘자연적 중심’이 되어 왔다.

[낙동강 배경 시와 소설]

문학 작품 안에서 낙동강은 물리적인 공간이나 자연적인 경관이 아니라, 일제 강점기, 6·25 전쟁, 산업화 등 사회 정치적인 국면과 깊은 연관을 맺으면서 문학적 형상화가 이루어졌다. 일제 강점기에는 식민의 수탈 현장, 6·25 전쟁기에는 전쟁의 처절함, 산업화 시기에는 국가 개발과 생존권을 둘러싼 저항, 그리고 환경 생태의 주제까지 아우르면서 낙동강 줄기만큼 질긴 생명력을 지닌 주변 민중의 애환이나 역사에 대해 비유적으로 형상화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일제 강점기에 곡창 지대인 김해 들판을 가로지르는 낙동강 하류는 강의 유유함보다는 일제 수탈의 극심한 현장이자 농민들의 고통을 압축적으로 드러내어 주는 문학 공간으로 등장한다. 양우정(梁雨庭)은 시 「낙동강」[1928]에서, “낙동강은 칠백리/ 옥야천리엔/ 낫서른 사람들만/ 모여서 드네/ 십리 만석 보고는/ 죄다 남 주고/ 이 땅의 백성들은/ 다 쫓겨가네.”라고 표현하였고, 이어 김용호(金容浩)[1912~1973]의 장시 「낙동강」[1938]에서도 일제의 폭압적인 수탈을 적나라하게 진술하고 있다. 조명희(趙明熙)[1894~1938]의 소설 「낙동강」[1927]은 일제 강점기의 지주와 소작인의 대립 갈등을 계급 문제와 연결시킨 한국 근대 문학사에서 대표적인 계급 문학 작품이다.

둘째, 전반적으로 6·25 전쟁기 낙동강은 ‘사병들이 강물 위를 떠내려가는’[박현서, 「낙동강 14-갈매기들의 전사」, 1990], ‘피바람을 휘감은 역사’[이종두, 「낙동 동류」, 1952]의 현장임을 전제로 하고 있다. 특히 낙동강 전선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마지막 방어선, 한쪽에는 뚫어야만 하는 최후의 걸림돌로 작용하면서 치열한 장소가 되었다. 이 때문에 격전지 낙동강을 바라보는 남북의 시적 형상화 작업이 다르게 나타난다.

임화(林和)[1908~1953]의 「밟으면 아직도 뜨거운 모래밭 건너」[1950]: “낙동강을 건너……/ 나아가자 동무들아 다만 앞으로/ …… 원쑤들이 처박힐/ 현해탄의 물결 높고 험한 바다로.”

②최기형의 「구명의 강」[1958]: “출렁출렁 흐르는 팔백리/ …… 너를 세기우에 반공(反共)의 방패로 벼개 삼고…….”

①과 ②처럼 낙동강은 서로 지켜야 하는, 혹은 뚫어야 하는 경계가 되면서 이데올로기의 대립 공간으로 맞서고 있다.

소설 역시 마찬가지이다. 홍성원의 『남과 북』[1987]에서는 전쟁의 참상을 사실적으로 그려 내면서 동족상잔의 비극이 극대화되는 공간으로 재현된다. 이러한 참상의 사실적 재현은 결국 전쟁의 근원으로의 이데올로기의 폭력성을 드러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한숙의 『고가』[1956], 강인수의 『낙동강』[1992]에서는 가족사와 역사가 중첩되면서 개인이나 가족이 전쟁 안에서 어떻게 굴절되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셋째, 요산(樂山) 김정한(金廷漢)[1908~1996]은 산업화 시기 낙동강 주변의 가난한 마을과 강마을 사람의 고단한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을 많이 창작한다. 특히 그는 현재 상황의 근원을 일제 수탈과 연결하여 수탈과 저항의 삶이 낙동강의 유유함만큼 이어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모래톱 이야기」[1966], 「유채」[1968], 「뒷기미나루」[1969], 「수라도」[1969], 「독메」[1970], 「산서동 뒷이야기」[1970] 등에서 김정한낙동강 하류 지역을 민족과 민중의 삶의 터전으로 형상화하였다.

마지막으로 낙동강 건설로 인한 생태 파괴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생태 문제와 연관한 생태시들이 낙동강을 배경으로 형상화되기도 한다. 김규태는 「흐르지 않는 강」[1985]에서 “오늘 이 하구에 다다른 너의 긴 여로는/ 죽음과 고뇌와 번민으로 시름하여/ 너의 말간 얼굴은/ 어느덧 타 버렸다.”고 표현했으며, 강남주는 「흐르지 못하는 강」[1997]에서 낙동강을 ‘사지 마비’, ‘페스트 환자’ 등에 비유하면서 낙동강 생태의 심각성을 고발하고 있다.

한편, 계급적 대립이나 현장 고발의 세계를 넘어 ‘강’이 갖는 유구함의 상징에 초점을 맞추거나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적 장소가 되기도 하면서 생의 의지를 돋우는 터로 형상화한다. 안도현은 시 「낙동강」[1981]에서, “내 눈물 웅얼웅얼 모두 모여 흐르는/ 낙동강/ 그 맑은 마지막 물빛으로 남아 타오르고 싶었다.”며 묘사했고, 또한 시 「다시 낙동강에서」에서는 “강물이 하나의 회초리가 되어 나의 생을 다잡게 하였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한편, 젊은 날의 방황과 고뇌 그리고 성숙의 과정을 그린 이문열의 자전적 소설 「젊은 날의 초상」[1981]도 낙동강 하류에서 출발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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