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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5335
한자 朝鮮實業協會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정이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실업 단체|협회 단체
설립 시기/일시 1904년 11월연표보기 - 설립
해체 시기/일시 1914년 6월연표보기 - 해체
최초 설립지 조선실업협회 - 부산광역시

[정의]

개항기 부산 지역에 있었단 일본 기업인 단체.

[설립 목적]

조선실업협회(朝鮮實業協會)는 부산 지역에서 일본 국내에 한국의 경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일본으로부터 자본과 인력을 유치하며 거류민의 한국 내 정착 기반의 정비를 도모하고자 설립되었다.

[변천]

러일 전쟁이 한창 중인 1904년 11월 부산 지역에서 내전죽삼(內田竹三)의 주도로 찬동자 76명이 모여 조선실업협회를 설립하였다. 한국이 일본에 합병된 이후 조선실업협회의 방침에 회원들이 동의하기 어려운 부문이 있게 되어 점차 그 회원 수가 줄어들었으며, 특히 설립 주도자 내전죽삼이 체포[그 이유는 불명]됨에 따라 1914년 6월 기관 잡지의 발행을 중지하고 조선실업협회의 활동을 정지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조선실업협회의 주요 사업으로는 한국에 건너온 일본인 기업가를 위한 한국 사정에 대한 소개와 안내, 즉 일본인의 조선 유치와 정착 기반의 정비, 당시의 시사 문제의 연구, 기관 잡지인 『조선지실업(朝鮮之實業)』의 발행 등을 들 수 있다. 『조선지실업』은 1905년 5월 제1호 발간부터 1914년 6월 100호까지 발행되었다. 조선실업협회는 집행부와 회원으로 이루어졌고, 집행부는 간사와 평의원으로 구성되었다. 간사는 협회의 사무와 회계 및 『조선지실업』의 기사 집필·편집을 담당하였고, 평의원은 협회의 운영을 심의하고 감독하였다.

조선실업협회는 설립 직후인 1905년부터 회원 수를 늘려갔다. 신규 회원 수를 보면 1905년 345명에서 최대의 신규 회원을 모집한 1911년에는 2,405명, 그리고 협회가 해산되는 1914년에도 1,459명이었다. 회원을 민족별로 보면, 일본인과 한국인으로 구성되었다. 한국인은 1908년 1명을 시작으로 1909년 신규 회원으로 5명, 1913년에는 최대의 신규 회원인 1,202명으로 불어났다. 1914년 총 회원 1만 1610명 중 한국인은 2,545명이었다.

[의의와 평가]

조선실업협회는 일본의 조선 침략에 앞장선 민간단체로서 『조선지실업』의 발행 등 침략 이데올로기의 확산에 충실하였다. 특히 1904년부터 제1차 세계 대전에 이르기까지,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에 대한 군사적·정치적 압박과 경제적 수탈 및 문화적 멸시를 시도하는 데에 있어서,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의 확산과 세론의 환기 등 민간 실업 단체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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