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48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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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洋-産業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상로 99[초량동 132-4]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성일 |
[정의]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에 설립된 신발 제조업체.
[변천]
1951년에 현수덕과 현수창, 현수명이 부산시 동구 초량동의 유리 공장을 인수하여 동양고무공업사라는 이름으로 신발 공장을 차렸다. 충청북도 괴산군이 고향인 이들이 6·25 전쟁 피란 시절에 만든 신발은 동자(東字)표였고, 당시 70여 개의 경쟁 업체보다 품질이 우수하였다. 휴전 후 현수명[『부산 상공 명람』[1962, 1964]에는 현수한으로 나옴]이 남아 동양고무공업을 차렸다. 동양고무공업은 1953년 8월 7일에 현수명에 의해 부산시 동구 초량동 132-4번지에 설립되었다.
1957년 3월 18일에 동양고무산업으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1968년에 6억 3000만 원의 대출로 인해 관리 기업체로 지정되기도 하였고, 1971년에는 화재로 위기에 처하였으며, 이후 나이키로부터 대량의 주문을 받으면서 기업이 회생하였다. 1974년 11월 15일에 법정 관리가 종결되었고, 대표 이사로 현수명이 취임하였다. 1975년에 ‘월드컵’이라는 고유 브랜드의 상표 등록을 하고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그해에 제15회 동탑 산업 훈장을 받았다.
1976년 11월 30일에 제13회 수출의 날 철탑 산업 훈장을 받았다. 1977년 10월 8일에 대표 이사로 현승훈이 취임하였고, 1982년 3월 2일에는 대표 이사로 남상철이 취임하였다. 1986년에 르까프 사업을 개시하였고, 제23회 은탑 산업 훈장을 받았다. 1989년 11월 1일에는 화승산업으로 개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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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동양고무산업은 고무신 등의 신발류 제조 및 판매를 주요 사업으로 하였다. 고유 브랜드인 ‘월드컵’ 제품을 생산하였다.
[의의와 평가]
동양고무산업의 종사자 수는 1962년에 808명이었고, 1964년에는 1,124명, 1969년에는 1,817명, 1972년에는 2,702명, 1975년에는 2,805명, 1977년에는 5,361명, 그리고 1980년에는 5,317명이었다. 동양고무산업은 국제상사와 삼화, 진양, 태화와 더불어 부산 지역을 대표하는 신발 공장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신발 회사이다. 고무신에서 시작하여 다국적 기업의 하청 생산, 그리고 독자 브랜드로 힘겹게 성장해 온 기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