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47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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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和-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장지용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 있었던 신발 제조업체.
[변천]
1925년에 21곳에 불과하던 고무 공장이 1933년에 72개로 늘어나 과잉 생산의 문제가 불거지자, 조선총독부가 이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삼화고무가 설립되었다. 삼화고무는 1934년 9월 18일에 13개의 신발 공장을 합병하여 요네쿠라 세이자부로[米倉清三郎]에 의해 부산부(釜山府) 범일정에서 삼화호모(三和護謨)로 설립되었다. 당시 자본금은 80만 원이었으며, 연간 1,000만 족을 생산할 수 있는 대규모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광복 이후 1946년에 왕기영이 적산 관리인으로 선정되어 삼화고무로 개칭하여 운영하다가 귀속 재산으로 불하받았다. 1951년에는 김예준에게 불하되었으며, 1954년 8월에 삼화고무공업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1958년 8월에는 당시 한국생사와 조선견직의 사장인 김지태가 인수하였다. 이후 범표 신발을 출시하였고, 1966년에 범표를 상표 등록하였다. 1974년에는 일본에서 고성능 신발 제조기와 세트를 발주, 제작하고 일본의 일본고무와 기술 제휴를 맺었다. 1976년 1월 15일에 삼화고무공업에서 삼화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1984년에 타이거를 상표로 스포츠화 시장에 진출하였다. 삼화는 1980년대 중반까지 수출 실적 1~2위를 다투던 우리나라 대표적인 신발업체였으나, 1992년 9월 15일에 부산 지역의 대형 신발업체 가운데 가장 먼저 도산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삼화고무는 신발을 제조·판매하였다. 범표를 상표로 하여 고무신을 제조하였으며, 신발 수출이 본격화되면서 영문명인 타이거를 상표로 하여 신발을 생산하였다.
[의의와 평가]
삼화고무는 일제 강점기에 등장한 대규모 신발 공장으로, 광복 후 부산 지역 신발 공장의 활기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대유행이었던 닛폰고무의 특산품인 ‘나일론 만화 슈즈’ 특허를 받아 히트를 쳤다. 미국 나이키와 리복 등 대형 바이어와 손잡고 급격히 성장하였으나, 1990년부터 수출 주문 감소와 자금난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결국 도산하여 지역 경제에 충격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