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44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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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朝鮮水産共進會 |
영어의미역 | Joseon Fisheries Exposition |
이칭/별칭 | 부산 수산 품평회,전 조선 수산 박람회,전 조선 수산 공진회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역사/근현대 |
유형 | 행사/행사 |
지역 | 부산광역시 서구 토성동 4가 2-3|중구 중앙대로 96[중앙동 4가 89-2]|영도구 남항서로 85[남항동 2가 16]|중구 신창동 1가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배석만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개최된 국내 최초의 수산업 박람회.
[연원 및 개최 경위]
1910년대 수산업은 일본인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였다. 여기에 부응하여 조선총독부와 수산업자들은 관민 합작으로 보다 체계적인 수산업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일환으로 박람회인 조선 수산 공진회를 개최하였다. 조선 수산 공진회 규칙 2조를 보면 “수산에 관한 제반의 물품을 진열하고 비교 심사를 하여 사업의 개량 발달에 도움이 될 목적으로 개최한다.”고 실시 목적을 밝히고 있다. 생산품 및 수산 사업의 우열과 득실을 심사하여 수산업자를 고무·격려하고, 비교와 대조를 통해 관민의 자각을 환기시켜 일본인에게 조선 수산의 실상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아울러 조선총독부가 식민 통치의 관점에서 조선의 발전상을 선전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행사 내용]
조선 수산 공진회장은 총 4개가 부산 곳곳에 설치되었다. 제1회장은 현재의 서구청 자리에 조성되었던 다이쇼 공원[大正公園], 제2회장은 구 부산역[현 중앙역 근처] 근처의 신축 경상남도 물산 진열관, 제3회장은 영도에 있는 조선총독부 수산 시험장, 제4회장은 부산상업회의소였다. 각 회장에는 전국에서 출품된 수산 관련 물품을 품목별로 5부(部), 14류로 나누어 전시하였다. 충청북도를 제외한 조선 전도에서 총 9,411점이 출품되었다. 아울러 일본, 대만, 만주에서도 2,413점이 출품되었다.
제1회장은 다시 1호관부터 3호관까지 나누어 어선, 어구류, 건조품, 염장품 등을 진열하였고, 제2회장은 어유품(魚油品), 조미품, 해조류 등을 전시하였다. 제3회장은 관청, 학교, 단체의 학술적 참고품, 기계류, 수족관이 있었고, 제4회장에는 식량, 공예품 등이 진열되었다. 조선 수산 공진회를 계기로 각종 부대 행사도 개최하였다. 미술 골동 전람회, 위생 전람회 등이 열렸고, 연등 행사, 마라톤 대회, 불꽃놀이, 기생 무용 등 다양한 오락 행사도 열렸다.
[현황]
조선 수산 공진회는 1923년 10월 10일부터 30일까지 열렸으며, 1915년 경성에서 열린 조선 물산 공진회 이후 조선 최대의 박람회이자 수산업 박람회로는 국내 최초의 박람회였다. 1923년 1월 설립된 조선수산회와 각도 수산회 및 각도가 주최하였으며, 박람회 기간 동안 약 28만 명 정도가 관람하였다. 전국 각 지역은 물론 일본에서도 야마구치[山口], 이시카와[石川], 나라[奈良] 등의 지역에서 단체 관람객들이 방문하였다. 조선 수산 공진회는 같은 시기 경성에서 열린 부업품(副業品) 공진회, 대구에서 열린 전국 특산품 진열회와 함께 1923년에 열린 3대 공진회로 불렸다.
일제 강점기 다양한 형태로 개최된 박람회, 공진회 등은 식민성과 근대성이 중첩되어 나타나는 공간이었다. 따라서 이들 행사에 주목하는 것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아울러 행사 내용을 토대로 1920년대 수산 정책 및 수산업계의 동향을 살펴보는 데도 의의가 있다. 특히, 부산에 있는 시설 중에서 천황의 이름을 딴 공원, 식민 통치의 근대성을 선전하는 경상남도 물산 진열관, 조선총독부 수산 정책의 상징인 수산 시험장, 일본인 주도 부산 경제계의 심장부인 부산상업회의소가 각각의 입장을 대변하듯이 공진회장이 되었다는 데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