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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태부인경수연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3055
한자 七太夫人慶壽宴圖
영어의미역 Picture of Seven Government Officials Praying for Longevity of Their Old Parents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63[대연동 948-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재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13년 11월 13일연표보기 - 칠태부인경수연도 보물 제1809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칠태부인경수연도 보물로 재지정
현 소장처 부산광역시립박물관 -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63[대연동 948-1]지도보기
성격 기록화
작가 강세황[글씨]
서체/기법 행서체[글씨]
소유자 부산광역시청
관리자 부산광역시립박물관
문화재 지정번호 보물

[정의]

부산광역시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경수연의 모습을 담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기록화.

[개설]

경수연(慶壽宴)이란 장수(長壽)를 축하하기 위해 베푼 잔치를 말하며, 경수연도(慶壽宴圖)는 양로(養老)를 중시한 조선 시대의 대표적 사가 행사도(私家行事圖)의 일종이다. 칠태부인경수연도(七太夫人慶壽宴圖)는 1691년(숙종 17) 8월 70세 이상 된 노모를 모시고 있는 7명의 재신(宰臣)[당상관 이상으로 핵심 요직을 맡은 신하]과 종신(從臣)[언관이나 승정원, 경연에 관계하는 신하]이 자신들의 모친을 위해 올린 경수연의 광경을 담은 기록화이다. 당시 숙종은 1605년(선조 38)에 거행된 경수연의 전례(前例)에 따라 연수(宴需)[잔치에 드는 물건과 비용]를 보내 주고 사악(賜樂)[임금이 신하에게 풍류를 내려 주던 일]하였다.

칠태부인경수연도는 1691년 8월에 경수연을 치른 후 기념으로 제작하였던 그림을 모본(母本)으로 1745년(영조 21) 이전 어느 시점에 새롭게 그린 작품이다. 칠태부인경수연도에 들어 있는 글은 연회가 베풀어졌을 당시 홍문관 부제학이었던 권해(權瑎)[1639~1704]가 지은 것인데, 권해의 증손인 권조언(權朝彦)[1710~1778]의 부탁으로 1745년 음력 7월 강세황(姜世晃)[1713~1791]이 쓴다는 내용이 있어 연회가 베풀어진 후 54년 만에 기록된 것임을 알 수 있어, 현재까지 전해 오는 경수연도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 중의 하나로 주목되는 작품이다. 2013년 11월 13일 보물 제180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견본 채색(絹本彩色)에 크기는 세로 71.0㎝, 가로 723.0㎝이다. 연회를 표현한 그림과 연회 참석자의 좌목(座目), 사전(謝箋) 및 서(序)로 구성된 두루마리[卷軸] 형태로, 그림은 정밀화의 구도상 도화서(圖畫署) 화원의 솜씨로 보이고, 글씨는 행서체로 강세황이 쓴 것이다.

[특징]

칠태부인경수연도는 수묵 산수화풍, 소나무 묘법 및 명암에 대한 무관심 등 17세기 말을 전후한 시기의 기록화 양식과 상통하며, 유연하면서도 차분한 필선, 변화 있는 세부 표현, 행사 내용의 요약적인 전달력 등을 갖추고 있어 회화적으로 우수한 행사 기록화로 평가된다. 그리고 가로로 길게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횡권(橫卷) 형식을 취하여 순서에 따라 작품을 전개시킨 방식은 드문 예이며, 장면과 장면 사이를 나무로 구분하는 방식이 일찍이 사용되었음을 보여 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의의와 평가]

강세황의 33세 때 필적이 포함되어 있어 작품의 제작 시기를 분명히 알 수 있고, 현재까지 전해 오는 경수연도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 중의 하나로 주목되는 작품이다. 또한 회화적으로 우수한 기량이 돋보이는 등 당시 기록화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으며, 당대의 명필로 인정받던 강세황의 글씨, 그리고 7m가 넘는 작품의 크기 및 작품의 성격 등으로 볼 때 조선 후기 기록화를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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