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11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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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聖花院- |
영어의미역 | Seonghwawon Village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사하구 구평동 성화원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표용수 |
성격 | 자연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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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 시기/일시 | 1950년 - 경상남도 부산시 사하면 구평리 |
변천 시기/일시 | 1957년 - 경상남도 부산시 사하면 구평리에서 경상남도 부산시 서구 사하출장소 구평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75년 - 부산직할시 서구 사하출장소 구평동에서 부산직할시 사하출장소 구평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83년 - 부산직할시 사하출장소 구평동에서 부산직할시 사하구 구평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 부산직할시 사하구 구평동에서 부산광역시 사하구 구평동으로 개편 |
자연 마을. | 성화원 마을 - 부산광역시 사하구 구평동 성화원 마을 |
[정의]
부산광역시 사하구 구평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
[명칭 유래]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많은 전쟁고아가 생겨 구호 시설인 성화원(聖花院)이 설립됐는데, 이 성화원 부근에 형성된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성화원 마을의 형성은 성화원 설립과 비슷한 시기로 추정된다. 성화원은 6·25 전쟁 당시 전쟁고아들을 위해 설립되었고, 이후 1960년대에는 기독교 출신 상이 제대 군인들의 자활 목적으로 운영되었다. 이 시기 음성 한센인도 함께 수용되었으며, 이후 성화원에 수용되어 있던 음성 한센인이 이 지역에 정착하여 닭이나 돼지 등 가축을 기르고 파 같은 밭작물을 재배해 시장에 내다 팔게 된다. 이때 성화원으로 알려진 마을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 구평 농장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지역은 오랫동안 오지로 남아 있다 1980년대 영세 가구 공장들이 비어 있던 축사를 개조해 가구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구평동 가구 단지’로 호황을 누렸지만, 2000년대 이후 영세 가구업자들이 하나 둘 이곳을 떠나며 대형 판매 업체 몇 곳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마을이 속한 지역은 1957년 부산시 사하면 구평리에서 부산시 서구 구평동이 되었다. 1975년 부산직할시 사하출장소 구평동이 되었다. 1983년 부산직할시 사하구 구평동이 되었다가 1995년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승격하면서 부산광역시 사하구 구평동 성화원 마을이 되었다.
[자연 환경]
성화원 마을은 두송 반도 북쪽 두송 고개로 넘어가는 봉화산 서쪽 자락에 위치한다. 마을 동쪽으로 감천항이 있다.
[현황]
성화원 마을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주택지와 구평동 가구 단지로 조성되며 옛 흔적을 찾을 수 없다. 현재 구평동 가구 단지에는 레이디 가구점, 리라 가구 백화점, 피로니 가구, 코렉스 가구점, 에몬스가구 등 많은 가구 대리점과 구평 농장, 유일 냉장, 선일 포장, 세일산업 등의 공장이 가동 중에 있다. 이곳은 감천항 배후 도로를 접하는 준공업, 자연 녹지, 항만 시설 보호 지구 및 감천항 관세 자유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철강 생산 업체인 (주)Y.K. 스틸과 선박 수리 제조업체 (주)강남을 비롯해 크고 작은 업체들이 입주해 있다. 또한 한국선박기관수리조합 매립지 완공 및 택지 개발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