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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1080
한자 鶴城里-
영어의미역 Hakseongri Village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사상구 학장동 학성리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전영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자연 마을
변천 시기/일시 1914년 - 경상남도 동래군 사상면 학장리
변천 시기/일시 1963년 - 경상남도 동래군 사상면 학장리에서 부산직할시 부산진구 학장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75년 - 부산직할시 부산진구 학장동에서 부산직할시 북부출장소 학장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78년 - 부산직할시 북부출장소 학장동에서 부산직할시 북구 학장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95년 - 부산직할시 북구 학장동에서 부산광역시 사상구 학장동으로 개편
자연 마을. 학성리 마을 - 부산광역시 사상구 학장동 학성리 마을

[정의]

부산광역시 사상구 학장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

[명칭 유래]

학성(鶴城)이란 이름은 엄광산 기슭에 위치한 학성[고려에서 조선 시대에 걸쳐 조성된 성으로 방어를 목적으로 쌓은 성을 후에 목장성으로 활용한 것으로 추정]에서 유래하였다. 학성의 명칭은 이 일대 모래펄에 학이 모여드는 풍경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한편 엄궁동 쪽에서 주례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의 이름인 ‘두루재’를 한자로 표현한 것이 학성이라고도 한다.

[형성 및 변천]

『동래부지(東萊府誌)』[1740] ‘성곽조’에 목장성이 나온다. 또한 “엄광산 산록의 강변 쪽에서 시작하여 부산 범천산까지 이어져 그 길이는 15리가 되며 지금은 없어졌다[自嚴光山山鹿江邊至釜山凡川山長十五里今廢].”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여기에 나오는 목장성 관문이 장문리와 학성리로 보인다. 성의 축성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목장성이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쌓은 것으로 볼 때 학성도 그 시대에 구축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성터는 낙동강변의 학성리에서 시작하여 주례·개금·가야를 거쳐 범천동까지 이어졌음이 유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마을도 고려 시대부터 형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고문서인 「사천면 전답재결영탈책(沙川面田畓災結永頉冊)」[1775]에는 학성(鶴城)과 장문(場門)의 2개 마을 지명을 확인할 수 있고, 「사상면 호적중초(沙上面戶籍中草)」[1888]에서는 장문리·학성리(鶴城里)와 함께 구덕리가 기록되어 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학성리, 장문리, 구덕리를 합쳐 동래군 사상면 학장리가 되었다. 1963년 부산직할시에 편입되며 부산진구 사상출장소 학장동이 되었다. 1975년 부산진구의 구포출장소와 통합하여 시 직할 북부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78년 북구 학장동이 되었다. 1995년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승격하면서 북구에서 분리되어 부산광역시 사상구 학장동 학성리 마을이 되었다.

[자연 환경]

학성리 마을 북쪽으로 학장천이 흐르고, 동남쪽으로 엄광산구봉산, 남쪽으로 구덕산시약산 등이 둘러싼 마을이다.

[현황]

학성리 마을이 있던 곳은 현재 주택지와 아파트 단지 등으로 변모하였다. 남쪽에는 구덕로가 있다. 학장리 쪽의 학성 성터가 거의 남아 있지 않으나, 주례 쪽으로 엄광산의 오지봉 아래 동서대학교와 경남정보대학이 들어선 지역에 큼직큼직하게 네모난 돌들이 8·15 광복 후까지만 해도 많이 발견되었다. 또한 개금동 쪽에도 성터를 볼 수 있었으며, 가야동 쪽에는 동의대학교 교사 신축을 할 때 옛 성터가 확인되기도 하였다. 조선 시대 학성리동평현으로 들어가는 입구 요지로서 대신동에서 구덕령을 넘어 들어오는 길목이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나 청일 전쟁 때의 일본군이 구덕령을 넘어 내륙 지방으로 침략하였다고 하니, 학성리는 그 통로의 한 요지였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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