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10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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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場門里- |
영어의미역 | Jangmunri Village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사상구 학장동 장문리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전영섭 |
성격 | 자연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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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14년 - 경상남도 동래군 사상면 학장리 |
변천 시기/일시 | 1963년 - 경상남도 동래군 사상면 학장리에서 부산직할시 부산진구 학장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75년 - 부산직할시 부산진구 학장동에서 부산직할시 북부출장소 학장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78년 - 부산직할시 북부출장소 학장동에서 부산직할시 북구 학장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 부산직할시 북구 학장동에서 부산광역시 사상구 학장동으로 개편 |
자연 마을 | 장문리 마을 - 부산광역시 사상구 학장동 장문리 마을 |
[정의]
부산광역시 사상구 학장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
[명칭 유래]
장문리(場門里) 마을 지명은 옛날 이 지역에 장터가 있어서 붙여진 것으로 해석하기도 하나 그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 일반적으로는 이 지역에 있던 목장성과 관련된 지명으로 전해진다. 사상 지역에서 전해 오는 고문서인 「사상면 우세답 개량안(沙上面牛稅畓改量案)」[1842년]의 전답(田畓) 지명에 장문리 서수장원(西守場員)이 나온다. 이 뜻을 풀이하면, 장문(場門)은 목장성을 드나드는 문(門)을 말하고, 서수장(西守場)은 서쪽을 지키는 목장 문을 말한다. 결국 장문(場門)은 목장성의 서쪽 문이란 뜻이다. 옛날 목장성이 있을 때 장문리는 학성의 서쪽 끝 성문이 있던 곳을 말하는 것이다. 마을 이름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형성 및 변천]
장문리 마을의 형성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시대 여러 문헌에 장문리가 기록되어 있어 조선 시대에 마을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동래부지(東萊府誌)』[1740]에는 “장문리는 사천면 상단 관내에 있으며 관문에서 35리 거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경상남도 동래군 가호안』[1904]에는 “사상면 관내 장문평의 호수는 12호였다. 신씨(辛氏) 6호, 박씨(朴氏)가 4호이다.”라고 되어 있다. 고문서인 「사천면 전답재결영탈책(沙川面田畓災結永頉冊)」[1775]에는 학성(鶴城)과 장문(場門)의 2개 마을 지명을 확인할 수 있고, 「사상면 호적중초(沙上面戶籍中草)」[1888]에는 장문리·학성리와 함께 구덕리가 기록되어 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학성리, 장문리, 구덕리를 합쳐 동래군 사상면 학장리가 되었다. 1963년 부산직할시에 편입되며 부산진구 사상출장소 학장동이 되었다. 1975년 부산진구의 구포출장소와 통합하여 시 직할 북부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78년 북구 학장동이 되었다. 1995년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승격하면서 북구에서 분리되어 부산광역시 사상구 학장동 장문리 마을이 되었다.
[자연 환경]
장문리 마을 북쪽과 서쪽으로 학장천이 흐른다. 동남쪽에는 구덕산이, 남쪽에는 승학산이 있다.
[현황]
장문리 마을이 있던 곳은 학장천 남쪽 마을로 사상구 엄궁동과 인접한다. 현재는 반도 보라 아파트 등 주택지와 아파트 단지로 변모하였다. 마을 앞쪽으로 학장로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