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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 유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1054
한자 東萊鍮器
영어의미역 Brassware in Dongnae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특산물/특산물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이정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수공업품
재질 백동
용도 식기

[정의]

부산 동래 지역에서 조선 후기부터 1960년대까지 백동으로 만든 식기.

[개설]

조선 후기부터 담뱃대와 함께 동래의 명물로 손꼽혔던 동래 유기(東萊鍮器)는 구리와 니켈 등을 섞은 백동(白銅)으로 만들었는데, 특히 수저와 밥그릇은 동래 제품이 가장 모양이 좋았다고 한다. 유기에 색깔과 무늬를 넣는 정교한 세공(細工)은 전국에서 알아주었다고 한다.

[연원 및 변천]

동래 유기가 언제부터 생산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1740년(영조 16)에 편찬된 『동래부지(東萊府誌)』 각색 장인(各色匠人)에는 유기장 5명과 유장(鍮匠) 2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이 이전부터 동래 유기가 생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세기 초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 예규지(倪圭志)의 팔역 장시에도 동래장에 유기가 판매되고 있다. 1930년대에는 동래 담뱃대 생산의 쇠퇴를 대신하여 동래 유기의 대표적 생산품인 수저가 품질·기교·색깔 등이 단연 우수하여 생산 증가는 물론, 특산품으로 각광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동래 유기의 주요 재료인 니켈의 수입 금지는 동래 유기의 쇠퇴를 가져왔다. 특히, 유기는 6·25 전쟁 이후 연탄을 사용하면서 연탄가스에 변색되기 쉬운 성질 때문에 사용하기가 불편해졌을 뿐 아니라, 대량 생산되는 스텐 그릇 및 플라스틱 용기에 의해 차츰 가정에서 밀려났다. 그리하여 동래 유기는 1960년경에 명맥이 끊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제조(생산) 방법 및 특징]

유기의 종류는 제조 방법에 따라 방자 유기(方字鍮器), 주물 유기(鑄物鍮器), 반방자 유기(半方字鍮器)로 나뉜다. 동래 유기는 주물 유기였던 것으로 추정될 뿐, 명맥이 끊어져 정확한 제조 방법 및 특징을 알 수 없다. 다만, 동래 유기 중 수저와 밥그릇의 모양이 좋았으며, 색깔과 무늬를 넣는 정교한 세공은 전국에서 알아주었다고 한다.

[현황(관련 사업 포함)]

1960년경부터 동래 유기는 더 이상 생산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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