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06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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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水站- |
영어의미역 | Sucham Village |
이칭/별칭 | 시치메 마을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사상구 모라동 수참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전영섭 |
성격 | 자연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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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810년 - 경상남도 동래부 사상면 모라리 |
변천 시기/일시 | 1914년 - 경상남도 부산부 사상면 모라리에서 경상남도 동래군 사상면 모라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63년 - 경상남도 동래군 사상면 모라리에서 부산직할시 부산진구 모라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75년 - 부산직할시 부산진구 모라동에서 부산직할시 북부출장소 모라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78년 - 부산직할시 북부출장소 모라동에서 부산직할시 북구 모라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 부산직할시 북구 모라동에서 부산광역시 사상구 모라동으로 개편 |
자연 마을 | 수참 마을 - 부산광역시 사상구 모라동 수참 마을 |
[정의]
부산광역시 사상구 모라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
[명칭 유래]
수참(水站) 마을은 속칭으로 시치메라고 불렀다. 시찌메 또는 시치메는 수참(水站)이 변음(變音)된 말이다. 마을의 고로들에 따르면, 이곳에 집이 일곱 채 있어 일본말로 ‘시찌메’라고 불렀다고도 하지만 근거가 불분명하다.
[형성 및 변천]
마을의 형성 시기는 잘 알 수 없다. 다만 마을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오래전부터 있었던 나루터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낙동강 하구 지역에 있던 모래섬 사이로 낙동강이 세 갈래 줄기로 나뉘어 바다로 들어갔는데, 이 세 줄기로 나누어지는 강줄기를 삼차수(三叉水) 또는 삼분수(三分水)라 하였다. 이 중 한 줄기는 구포 감동포 앞을 지나 모라동의 서쪽 소요저도와 유도 동쪽으로 돌아서 흘렀다. 이 강물을 따라 이곳에 나루터가 생긴 것이다.
이 나루터를 중심으로 수참이 형성되었다. 수참은 수로로 배를 이용하기 위한 역참(驛站) 제도이다. 동래부 사천면 고문서(東萊府沙川面古文書) 중 향약계인 1810년(순조 10)의 「사상 연구계 좌목(沙上戀舊契座目)」에는 1600여 년부터 동래부 동평현에 속한 사천면 상단 모라리의 수참 마을에서 동래 부사의 부임과 퇴임 향연을 베풀었는데 당시 이곳은 사천원 수참인 동두저포였다.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보면, 낙동강 하구 지역에 삼차수, 칠점산과 포구였던 금곡동 동원, 구포 감동이 나오고 감동포 바로 아래쪽에 동두저포가 나온다. 수참 마을 나루터는 1903년(고종 40) 경부선 철로 공사 때 단절되었고, 1930년대 낙동강 제방을 쌓을 때 물길도 끊겨 옛 모습을 찾기 힘들게 되었다.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으로 동래군 사상면 모라리가 되었다. 1963년 부산직할시가 되며 부산진구 사상출장소 모라동이 되었다가, 1975년 부산진구 구포출장소와 통합하여 시 직할 북부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78년 북구 모라동이 되었으며, 1991년 인구 증가로 모라 1동이 되었다. 1995년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승격하면서 북구에서 분리되어 부산광역시 사상구 모라동 수참 마을이 되었다.
[자연 환경]
수참 마을 동쪽으로 백양산, 서쪽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있다.
[현황]
수참 마을은 모라동에서 가장 북쪽에 있었던 마을이다. 도시 철도 2호선과 경부선 철도가 지나가며, 택지 개발로 아파트와 주택이 들어서 있어 마을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이곳은 범방천을 경계로 조선 시대부터 모라동과 구포가 접하였다. 또한 수참 마을에 있던 나루터인 동두저포에서는 일본과 교역을 하였다고 한다. 조선 시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까지 한일 교역의 요지로서 일본 국왕사의 수로(水路) 운송에서 첫 기착지였던 동원진에서 하던 업무를 임진왜란 이후 이곳에서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내력이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으나 모라리 고동바위골 민요에서 엿볼 수 있다. 수참 나루의 남쪽 동네가 고동바위골인데, 이곳에서 전래되어 오는 민요 중에 “왜놈아 잡놈아 고동바위 물 간다. 편지 한 장 전해 주소.”[1979년 6월, 모라동 거주 김기환에게 채록]라는 가락이 있다. 수참 나루인 동두저포에 찾아온 왜의 사절들에게 고동바위골의 약수를 공급해 주면서 교역하였을 때 생겨난 노래로 추정하고 있다. 수참 마을은 범방천을 경계로 지금도 구포동과 모라동으로 나뉘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