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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중보』 필화 사건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0263
한자 民主衆報筆禍事件
영어의미역 The Minju Jungbo Article Scandal
분야 역사/근현대,문화·교육/언론·출판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보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필화 사건
관련인물/단체 『민주 중보』|『조선 일보』|미군정청
발생|시작 시기/일시 1948년 6월 16일연표보기 - 『민주 중보』 허위 보도 명목으로 기자와 취재원 구속 및 정간
종결 시기/일시 1948년 8월 28일연표보기 - 『민주 중보』 관련자 재판으로 형 확정
발단 시기/일시 1948년 6월 5일 - 『민주 중보』, 전 총독부 고위 관리 부산 방문에 관한 기사 보도
전개 시기/일시 1948년 6월 9일 - 미군정청 딘 장관 『민주 중보』 필화 사건 관련 담화 발표
전개 시기/일시 1948년 6월 11~14일 - 주요 국내 신문과 인사들 미군정청의 담화에 불신 표출
전개 시기/일시 1948년 6월 15일 - 경무부장, 공보부장 공동 담화 발표
전개 시기/일시 1948년 8월 17일연표보기 - 『민주 중보』 속간
발생|시작 장소 『민주 중보』 필화 사건 - 부산광역시
종결 장소 『민주 중보』 필화 사건 - 부산광역시

[정의]

미 군정기에 부산 지역 신문인 『민주 중보』의 기자와 취재원이 구속되고 정간당한 필화 사건.

[역사적 배경]

미 군정의 전반적인 언론 정책은 귀속 재산의 처리, 각종 통제 법령의 제정과 시행을 통해 좌익 언론을 탄압하고 우익 언론을 비호하는 형태로 전개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부산 지역 언론도 미 군정의 통제와 간섭을 받았고, 좌익 신문에 대한 검거 및 정간 등의 탄압들이 속출하였다.

[경과]

『민주 중보』는 6월 5일자 2면 톱기사로 총독부 재무 국장을 지낸 일본인이 부산에 나타났으며 학무 국장, 조선은행 부총재 등 고위 관료를 지낸 일본인들도 조선에 들어왔다고 보도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조선에 들어온 목적과 동정이 주목된다는 내용을 덧붙였다. 이 기사를 받아 조선통신이 재보도하고, 국내의 다른 신문사들[『조선 일보』, 『대중 신문』, 『경향 신문』, 『한성 일보』, 『서울 신문』, 『조선 중앙 일보』, 『자유 신문』 등]도 반일 감정을 자극하는 논조의 내용을 연일 톱기사로 다루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미 군정청의 딘 장관은 6월 9일 담화를 발표하였다. 재일 미 당국에 문의한 결과 문제의 일본인들은 그날 도쿄[東京]에 있었으며 군정 당국이 이들의 방문을 요청한 일도 없으므로, 이러한 보도들은 명백한 ‘허보(虛報)’라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담화로 파문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주요 신문들은 군정 장관의 담화 내용을 믿을 수 없으며 의심할 수밖에 없는 여러 정황들에 대한 내용의 기사를 계속해서 내보냈다.

특히 『조선 일보』는 군정청의 담화 내용보다 더 많은 분량으로 담화 내용에 대한 의혹과 불신을 제기하면서 정치 지도자들의 강경한 입장을 보도하기도 했다. 이에 경무부장과 공보부장이 다시 6월 15일 공동 담화를 통해 이 보도는 근거 없는 허위 사실이라고 발표하였다. 관련 보도 내용은 모두 허위이며 이를 최초 보도한 『민주 중보』의 기자들과 이를 제공한 남로당원을 구속한다는 내용이었다.

[결과]

이 사건으로 『민주 중보』는 1948년 6월 16일부로 태평양 미국 육군 총사령부 포고령 제2호에 의거, 무기 정간 처분을 받았다. 6월 18일 경무부장 조병옥은 2차 담화를 발표하여 이 사건을 ‘남로당이 민심을 교란하고 반미 사상을 고취하여 정부 수립을 방해하려는 활동’과 연관이 있다고 발표하고 관계자들에 대한 엄벌 방침을 천명하였다.

1948년 7월 12일 『민주 중보』 편집부장 조병종(曺秉宗), 사회부장 손연순(孫連淳), 남로당원 김래엽(金來燁)이 기소되었으며 편집국장 이만용과 기자 성병규(成炳奎)는 보석으로 석방되었다. 8월 28일 재판에 의한 형이 확정되어, 이만용은 벌금 1만 원, 손연순과 조병종은 각각 금고 6개월에 2년간 집행 유예, 성병규는 무죄가 선고되었다. 김래엽에 대하여서는 기소 사실대로 신문지법(新聞紙法)에는 해당치 않고 남로당 관계만 저촉된다고 하여 6개월의 금고가 선고되었다. 이후 『민주 중보』는 두 달여가 지나서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 8월 17일에 속간되었다.

[의의와 평가]

미 군정의 좌익 언론 탄압 과정에서 발생한 필화 사건으로, 언론에 대한 미 군정의 인식과 태도가 어떠하였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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