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00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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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瓜亭-古典文學 |
영어의미역 | Classical Literature Singing Jeonggwa-jeong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수영구 망미동 산6-2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
집필자 | 이성혜 |
[정의]
고려 후기부터 조선 후기 사이에 부산광역시 수영구 망미동에 있는 정과정을 대상으로 한 한시 작품.
[개설]
정과정(鄭瓜亭)을 노래한 고전 문학은 대부분 한시(漢詩)이다. 과정(瓜亭) 정서(鄭敍)의 「정과정」[또는 「정과정곡(鄭瓜亭曲)」]이 알려진 것은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1287∼1367]이 지은 「정중승이 유배지 동래에서 달을 보고 거문고를 연주함[鄭中丞謫居東萊對月彈琴]」이란 시를 자신의 저서인 『소악부(小樂府)』에 기록하면서부터이다. 악부(樂府)란 원래 중국의 민가(民歌)에서 채록하여 발전한 시가 형식인데, 고려에서는 민요와 시가(詩歌)를 한시화(漢詩化)[한시로 번역]한 것을 소악부라고 칭하였다. 소악부란 주로 역사·풍속·민간의 풍정(風情)을 묘사한 시 등을 총칭하여 일컫는 말이 되기도 하였다.
이제현이 『소악부』에 「정과정곡」과 관련된 시를 실은 이후 민사평(閔思平)[1295∼1359], 임춘(林椿), 유숙(柳淑)[1324∼1368], 정추(鄭樞)[1333∼1382], 한수(韓脩)[1333∼1384] 등의 고려 시대 시인들이 잇달아 그 시제(詩題)[시의 제목이나 소재]를 따라 시를 지었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도 홍위(洪葳)[1620∼1660], 소두산(蘇斗山)[1627∼1693], 이익(李瀷)[1681∼1763] 등의 시인들도 정과정을 노래하였다. 이를 보면, 정과정은 고려조에 이미 사대부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었으며, 조선조에서도 시인들의 감성을 자극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사(高麗史)』의 「악지(樂志)」에 특별히 「정과정곡」의 작자와 유래를 적어 놓고서는 ‘사극처완(詞極悽惋)[가사가 지극히 처량하다]’이라고 하였다.
정과정을 노래한 한시 작품은 대부분이 정서 개인의 추모나 「정과정곡」의 내용을 재현하고 있다. 간신의 모함으로 유배를 가게 된 정서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표출하고, 유배지 동래에서 자신을 다시 불러 주기를 바라며 잠 못 이루고 거문고를 연주하는 정서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다음에서는 정과정을 노래한 대표적인 작품들을 시대 순서대로 감상해 보자.
[고려 시대 작품]
1. 이제현의 「정중승이 유배지 동래에서 달을 보고 거문고를 연주함[鄭中丞謫居東萊對月撫琴]」
억군무일불첨의(憶君無日不沾衣)[임 생각에 하루인들 눈물 아니 흘리오리]
정사춘산촉자규(正似春山蜀子規)[이맘 정녕 봄 산의 피눈물 젖는 접동새]
위시위비인막문(爲是爲非人莫問)[옳거니 그르거니 사람들아 묻지 말라]
지응잔월효성지(祗應殘月曉星知)[지는 달 새벽 별은 뚜렷이 알 터이니]
-「영남악부(嶺南樂府)」(『낙하생집(洛下生集)』6, 『한국 문집 총간』290)
소악부에 실린 이 작품은 낙하생(洛下生) 이학규(李學逵)[1770∼1835]의 『낙하생집(洛下生藁)』에도 실려 있다. 이제현은 고려 속요인 「정과정곡」을 칠언 한시로 압축하였다. 이 시의 내용은 「정과정곡」의 “[전강]내 님을 그리와 우니다니 [중강]산(山) 졉동새 난 이슷요이다 [후강]아니시며 거츠르신 아으 [부엽(1)]잔월효셩(殘月曉星)이 아시리다.”를 한역(漢譯)한 것이다. 악부로는 조선 시대 이익(李瀷)[1681∼1763]도 노래한 바가 있는데, 이익의 악부도 「정과정곡」을 한역화한 작품이다[참조: 「해동악부」(『성호전집(星湖全集)』8, 『한국 문집 총간』198)].
2. 임춘의 「정학사를 추도함[追悼鄭學士]」
선생소쇄출진애(先生蕭灑岀塵埃)[선생은 깨끗하여 속세를 벗어났는데]
홀탄풍전옥수최(忽歎風前玉樹嶊)[안타깝다, 바람 앞에 옥수(玉樹)가 꺾어졌네]
상제이교장길거(上帝已敎長吉去)[상제 이미 장길(長吉)을 데려가시고]
해산증대악천래(海山曾待樂天來)[해산(海山)의 신선 일찍부터 낙천(樂天) 오길 기다렸지]
당년한묵위인보(當年翰墨爲人寶)[생전의 시문은 사람들이 보배로 여겼으나]
고세성명조물시(高世聲名造物猜)[드높은 명성을 조물주가 시기했네]
종차광려무하감(從此匡廬無賀監)[이제부턴 사명(四明)에 하감(賀監)이 없을테니]
수능호아적선재(誰能呼我謫仙才)[나의 재능 적선(謫仙)임을 그 누가 알아주리]
-『서하집(西河集)』2(『한국 문집 총간』1)
칠언 율시(七言律詩)인 이 시의 제목에 들어 있는 ‘정학사’는 정서를 말한다. 이 시는 한시에서 자주 이용하는 전고(典故)[이전의 시문 내용이나 전례·고사 등을 인용하는 방식]를 많이 활용하고 있다.
먼저, 3구의 ‘장길(長吉)’은 중국 당나라 시인 이하(李賀)[791∼817]의 자(字)이다. 이하는 26살에 요절한 천재 시인으로, 7살에 시를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임춘은 뛰어난 시인이었던 정서를 이하로 비유한 것이다.
4구의 ‘낙천(樂天)’은 중국 당나라 사람으로 자(字)가 낙천이었던 시인 백거이(白居易)[772∼846]를 가리킨다. 백거이는 815년에 발생한 재상 무원형(武元衡) 암살 사건에 관하여 직언하다가 조정의 분노를 사서 강주사마(江州司馬)로 좌천된 적이 있다. 백거이 역시 정서에 비유하고 있다.
7구의 ‘사명(四明)’은 중국 절강성에 있는 사명산(四明山)을, ‘하감(賀監)’은 중국 당나라 시인 하지장(賀知章)[677∼744]을 각각 일컫는다. 하지장은 궁중의 도서를 관리하는 비서감(秘書監)을 지냈으므로 ‘하감(賀監)’이라고 불렸으며, 만년에 사명산에 살면서 스스로 ‘사명광객(四明狂客)이라 자호(自號)하기도 하였다. 하지장 역시 정서로 비유된다. 이처럼 임춘은 정서의 뛰어난 시인적 기질을 중국 당나라 때의 유명한 시인인 이하·백거이·하지장 등에 견주고 있다.
3. 유숙의 「정과정」
타향작객두혼백(它鄕作客頭渾白)[타향의 객이 되어 머리가 하얗고]
도처봉인안편청(到處逢人眼徧靑)[도처에서 만나는 사람 곁눈질만 하네]
청야침침만창월(淸夜沈沈滿窓月)[깊고 푸른 밤 창 가득 달뜨면]
비파일곡정과정(琵琶一曲鄭瓜亭)[비파 한 곡조로 정과정을 연주하네]
봉래관외량명명(蓬萊舘外兩冥冥)[봉래관 밖은 모두 어둡고]
위봉루전절사성(威鳳樓前絶使星)[위봉루 앞에는 사신도 끊어졌네]
하처최감론객한(何處最堪論客恨)[어느 곳에서 객의 한을 받아주리]
비파일곡정과정(琵琶一曲鄭瓜亭)[비파 한 곡조 정과정을 연주하네]
-「영남악부(嶺南樂府)」(『낙하생집(洛下生集)』6, 『한국 문집 총간』290)
칠언 율시로 이루어진 유숙의 시는 1·2구에서는 유배로 고뇌하여 머리가 하얗게 되고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정서의 처지를, 3·4구에서는 달 밝은 밤마다 비파로 「정과정곡」을 연주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정서를 묘사하였다. 그러나 사방은 어둡고, 귀양을 풀어 준다는 소식을 가져올 임금님의 사신이 끊긴 상황에서 오직 「정과정곡」만을 연주하는 쓸쓸한 정서의 처지를 노래하며 시를 마무리하고 있다.
4. 정추의 「중승 정서가 유배지 동래에서 매일 달을 보며 새벽까지 거문고를 연주함[鄭中丞叙謫居東萊每月明彈琴達曙]」
운진장공일재천(雲盡長空日在天)[구름 거친 하늘에 해가 뜨도록]
횡금상대야여년(橫琴相對夜如年)[비낀 거문고 마주하고 밤마다 이렇게 한해를 보내네]
제견곡진사무진(啼鵑曲盡思無盡)[제견(啼鵑)곡조 다해도 생각은 끝이 없으니]
수파난교속단현(誰把鸞膠續斷絃)[누가 끊어진 거문고 줄을 이어 줄까나]
-「동국사영(東國四詠)」(『원재고(圓齋稿)』권상, 『한국 문집 총간』5)
3구의 ‘제견(啼鵑)’은 정서가 지은 곡명이라고 시 끝에 부기(附記)하였다[啼鵑中丞所製曲名]. 아마도 「정과정곡」을 일컫는 것이라 보인다. 시의 내용은 역시 임금님을 그리며 밤마다 「정과정곡」을 연주하는 정서의 모습이다. 마지막 구절에 나오는 ‘속현(續絃)[끊어진 거문고 줄을 잇다]’은 속가에서는 ‘재혼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므로, 위의 시에서는 임금님과의 재회를 뜻한다고 보인다. 그러나 시에서는 속현되기 어렵다는 한숨이 느껴진다.
5. 한수의 「정중승이 유배지 동래에서 달을 대하여 거문고를 연주함」
반륜강월상요금(半輪江月上瑤琴)[강에 비친 반달이 거문고에 오르니]
일곡신성고의심(一曲新聲古意深)[한 곡조 새로운 소리에 옛 뜻이 깊구나]
기위여금유종자(豈謂如今有鍾子)[어찌 지금에도 종자기 있겠냐마는]
지응탄진백아심(只應彈盡伯牙心)[백아의 마음으로 정성껏 연주할 뿐]
-『유항시집(柳巷詩集)』(『한국 문집 총간』5)
이 시의 3, 4구에 나오는 종자기와 백아는 『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에 나오는 이야기로 ‘백아절현(伯牙絶絃)[절친한 친구의 죽음을 슬퍼함]’, ‘지음(知音)[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의 고사(故事)로 유명한 인물이다. 시인 한수는 위 시에서 정서를 백아에 비기면서 종자기같이 진정으로 정서를 이해하는 사람이 없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조선 시대 작품]
조선 시대의 시인들도 정과정을 노래하였다. 내용은 거문고를 연주하며 자신의 마음을 달래는 정서의 처지와 심정을 대변한 것이 대부분으로 고려 시대 시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1. 홍위의 「정과정」
운산묘묘격진경(雲山杳杳隔秦京)[구름 낀 산 어둑하여 서울이 보이지 않고]
잔월제견불인청(殘月啼鵑不忍聽)[지는 달에 소쩍새 울음 차마 듣지 못하겠네]
천재연군무한의(千載戀君無限意)[천 년에도 임 그리는 마음 다함이 없는 뜻]
지금유창정과정(至今猶唱鄭瓜亭)[지금도 여전히 정과정을 노래하네]
-『청계집(淸溪集)』2(『한국 문집 총간』125)
유배지인 동래의 망산에 올라 임금님이 계시는 북쪽을 향하여 하염없이 바라보지만 서울은 보이지 않는다. 시의 표면에서는 그 이유가 ‘구름 낀 산’ 때문이라 하지만, 사실상 소식이 막힌 당시의 상황이 이면에 깔려 있다. 그러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거문고를 연주하는 정서의 마음이 시인 홍위에까지 전달되어 그가 다시 「정과정곡」을 노래하는 상황을 중의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2. 소두산의 「정과정을 노래함[題鄭瓜亭]」
타향위객빈무흑(他鄕爲客鬢無黑)[타향에서 객이 되어 수염이 모두 희고]
하처봉인안유청(何處逢人眼有靑)[어느 곳인들 만나는 사람마다 곁눈질만 하네]
일곡비파천고의(一曲琵琶千古意)[비파 한 곡조에 천고의 뜻을 담아]
시시독상정과정(時時獨上鄭瓜亭)[때때로 홀로 정과정에 오르네]
-『월주집(月洲集)』1(『한국 문집 총간』127)
소두산의 시 1·2구절은 유숙의 시 1·2구절과 매우 흡사하다. 정서가 연주한 악기가 시인에 따라 ‘비파’로 묘사되기도 하는데, 소두산 역시 비파로 묘사하였다. 여기서 옳고 그름을 따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시 역시 정과정을 오르는 정서의 처지를 노래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정과정을 노래한 고전 문학[한시]의 의의는 문학사적인 면과 지역사적인 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문학사적으로는, ‘충신연주지사(忠臣戀主之詞)[충신이 군주를 염려하고 그리는 노래]’의 대표적 작품인 「정과정곡」의 정신을 이었다는 점이다. 특히 고려 시대 시인에 의해서만 재현된 것이 아니고, 조선 시대 시인에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는 지역사적으로 볼 때, 부산의 지역이 역사적·문화적 공간으로 고려 시대까지 거슬러 가는 역사성을 지녔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