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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공단을 노래한 고전 문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0052
한자 宋公壇-古典文學
영어의미역 Classical Literature Singing Songgong-dan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동래시장길 27[복천동 229-78]|복천동 239|복천동 240-2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현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조선 후기 - 미상
특기 사항 시기/일시 조선 후기 - 「송공단가(宋公壇歌)」
관련 장소 송공단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229-78, 복천동 239, 복천동240-2지도보기

[정의]

조선 후기 부산의 송공단을 대상으로 지은 한시 작품.

[개설]

송공단(宋公壇)은 1742년(영조 18) 동래 부사 김석일(金錫一)[1694~1742]이 임진왜란 때 동래 부사 송상현(宋象賢)[1551~1592]이 순절(殉節)한 정원루(靖遠樓)의 옛터에 설치한 단(壇)이다. 송상현을 비롯하여 순절한 여러 선열을 모시고 있는데, 동래에서 순절한 이는 송공단에, 부산에서 순절한 이는 좌천동(佐川洞)정공단(鄭公壇)에, 다대포에서 순절한 이는 다대동윤공단(尹公壇)에 각각 안치하고 있다. 현재 동래 시장 안에 있는 송공단은 부산시에 의하여 1971~1972년에 대대적으로 정리된 것으로서, 전면 입구에 외삼문(外三門) 협문(狹門)이 있고, 주위에 괴석(塊石)으로 된 담장, 그리고 재실(齋室) 한 동이 세워져 있으며, 안에는 축단(築壇)이 있다.

송공단에서 송상현의 순절을 노래한 고전 문학은 주로 동래 지역에 지방관으로 부임했던 문인들에 의해 대부분 창작되었다.

[송공단을 노래한 한시]

1. 최수범의 시

풍우고성숙사수(風雨孤城孰死綏)[비바람 외딴 성에서 누군가 싸우다 죽었으니]

송후충열부인비(宋侯忠烈府人悲)[송상현의 충렬, 동래 사람 슬퍼하노라]

공단수척금유재(空壇數尺今猶在)[몇 척 제단만 지금도 쓸쓸히 있으니]

승사양양타루비(勝似襄陽墮淚碑)[흡사 양양(襄陽) 타루비(墮淚碑) 같구나]

일본 사신을 맞아 접대하던 접위관(接慰官)의 신분이었던 최수범(崔守範)은 송공단을 찾았다. 임진왜란 당시 풍전등화와 같은 외로운 동래성을 지키다 죽은 송상현 장군을 지역 사람들은 여전히 애도하고 있다. 여기서 목격한 것은 몇 척의 제단만 쓸쓸히 남아 있는 것뿐이었다. 이를 보고 최수범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는 뜻으로, 타루비 같다고 하였다. 타루비는, “진(晉)의 양호(羊祜)가 형양(荊襄) 지구의 도독(都督)으로 있을 때 인심을 크게 얻었는데, 그가 죽은 뒤에 군민들이 현산(峴山)에 비(碑)를 세우고 그 비를 바라볼 적마다 눈물을 흘렸으므로 이렇게 불렀다.”고 하는데, 후대에는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비석·유적 등에 사용되는 고사(故事)다.

2. 이헌경, 「송공단가(宋公壇歌)」

행가송공단(行歌宋公壇)[송공단 노래하건만]

송공불가견(宋公不可見)[송공은 볼 수 없어라]

단견고단상(但見高壇上)[다만 높은 단상에서]

경초비풍전(勁草悲風轉)[거센 풀 구슬피 바람에 쓸리노라]

유민위아어당년(遺民爲我語當年)[유민이 당시 일을 말하려는데]

미어선간루여선(未語先看淚如綫)[말하기에 앞서 끊임없이 눈물을 보이누나]

임진지세해적래(壬辰之歲海賊來)[임진년에 바다 도적이 오자]

송공신자등성전(宋公身自登城戰)[송공께선 몸소 읍성에 올라 싸우셨지요]

전시천혼대풍성(戰時天昏大風腥)[전투할 때 하늘은 어두웠고 피비린내 진동했지요]

동주최절창명렬(銅柱摧折滄溟裂)[구리 기둥 꺾이는 듯 푸른 바다 찢어지는 듯]

기교수만담인육(饑鮫數萬噉人肉)[굶주린 교룡 수많은 인육을 씹어 먹고]

장경축성성위발(長鯨蹙城城爲拔)[긴 고래 성을 짓밟아 읍성이 뽑혔지요]

아고무성아시최(我鼓無聲我矢摧)[우리 편 북소리 울리지 않고 우리 편 화살 꺾이자]

성두적기홍여혈(城頭賊旗紅如血)[읍성 머리엔 핏빛 같이 붉은 도적 깃발이]

군민둔주외로박(軍民遁走畏擄縛)[군관과 백성은 붙잡힐까 두려워 달아나는데]

공시구인불구활(公時求仁不求活)[공은 당시 인(仁)을 구할 뿐 살기를 구하지 않았지요]

곡고전패향서배(哭告殿牌向西拜)[전패(殿牌)에 곡하고는 서쪽으로 절하고 나서]

각향정원루중사(却向靖遠樓中死)[정원루로 향하다 돌아가셨지요]

문수복사공시방(問誰伏死公屍傍)[공의 시신 곁에는 누가 쓰러졌는가? 물으니]

친근상수신씨자(親近相隨申氏子)[친하게 서로 따르던 신씨(申氏)의 아들입니다]

문수비와쇄적수(問誰飛瓦碎賊首)[누가 기와를 던져 적의 머리를 부셨는가? 물으니]

양개관노일관비(兩箇官奴一官婢)[관노 두 명과 관비 한 명이 그랬습니다]

천생충의병일시(天生忠義並一時)[하늘이 충과 의를 일시에 냈는지라]

지금단선공제사(至今壇墠共祭祀)[지금까지 송공단에서 함께 제사하지요].

긴 서사시 형식의 작품이라 뒷부분을 약간 생략했음에도 당시의 상황을 파악하기엔 부족함이 없다. 이헌경(李獻慶)[1719~1791]은 임진왜란송상현의 전투를 동래 유민에게 물어본다. 저자의 말이 아닌 당시 전투를 목도한 유민의 표현을 빌었기에 내용은 더욱 생생하다. 피비린내 진동하는 듯했다는 구절에서는 참담한 전투의 모습을, 인육을 씹어 먹고 읍성을 짓밟았다는 구절에서는 처참한 당시의 실상을 알 수 있다. 송상현의 시신 곁에 쓰러진 사람이 누군지, 왜적에게 대항한 사람은 누군지 구체적으로 묻고 대답하는 데서 바야흐로 송공단송상현 외 순절한 여러 선인을 같이 모시고 있는 이유가 드러난다.

이외에도 조선 후기의 문인 송병선(宋秉璿)[1836~1905]의 「송공단유감(宋公壇有感)」 두 수 역시 송상현의 충렬을 애도하며 비분하는 내용이다.

[의의와 평가]

부산에 있는 송공단을 노래한 고전 문학은 송공단에서 모시고 있는 송상현의 순절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따라서 당시의 상황을 비분하며, 그 충절을 기리지 못한 채 지금은 쓸쓸하게 남아 있다 하였다. 이 중에서 이헌경의 작품은 주목할 만하다. 우선 내용에 있어서는, 작가의 감정을 시에 드러내기 보다는 유민의 입을 빌어 당시에 목도한 것들을 담담히 전술하고 있기에 송상현 순절에 대한 사항을 역사적으로 고증할 경우에도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된다. 작품 자체는 당시의 실상을 유민의 입을 빌어 유민이 목도하고 체험했던 동래 읍성 전투의 전개와 송상현 순절에 대한 사항을 사실적으로 읊은 장편 한시다. 따라서 송공단이라는, 부산 지역의 문화 유적을 제재로 삼은 여러 고전 문학 작품 중의 하나로만 간주하고 말기에는 무척이나 아쉽다. 고전 문학사의 사실주의적 서사시의 대표 작품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 하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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