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00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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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梵魚寺-古典文學 |
영어의미역 | Classical Literature Singing Beomeosa Temple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조선/조선 |
집필자 | 권정원 |
[정의]
조선 시대 부산의 범어사를 대상으로 지은 한시 작품.
[개설]
금정산 산마루에 있는 우물에 금빛 물고기 한 마리가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거기에서 놀았다는 설화에서 ‘범어사(梵魚寺)’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 범어사는 신라 시대 원효(元曉)[617~686]에 의해 창건되었다. 현존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최치원(崔致遠)[857~?]의 「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를 비롯해 각종 지리지에도 범어사 창건 설화가 그대로 전해진다. 영남 3대 사찰 가운데 하나인 범어사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고, 명산인 금정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어서 부산을 들르는 시인 묵객들이 많은 시를 남긴 곳이다.
[범어사를 노래한 한시]
범어사를 노래한 한시는 대략 50여 수가 넘는다. 『동래부지(東萊府誌)』 「제영 잡저(題詠雜著)」에 동래 부사를 지낸 이춘원(李春元)[1571~1634], 이정신(李正臣)[1660~1727], 박내정(朴乃貞)[1664~1735] 등이 지은 한시가 11수 가량 남아 있다. 특히 이안눌(李安訥)[1571~1637]은 1608년 2월부터 1년 4개월 동안 동래 부사로 재직하는 동안 2차례 범어사를 방문하였고, 이때 20수나 되는 범어사와 관련된 시를 지었다. 그리고 부산을 유람 차 들렀던 홍위(洪葳)[1620~1660], 이민보(李敏輔), 조수삼(趙秀三)[1762~1849], 홍한주(洪翰周), 조긍섭(曺兢燮), 심유(沈攸), 권이진(權以鎭)[1668~1734] 등이 남긴 한시도 10여 수가 남아 있다. 이 밖에도 범어사를 직접적 소재로 하지는 않았지만, 범어사 주변의 풍경이나 전설을 노래한 시들도 몇 편 남아 있다.
범어사를 노래한 한시들은 작품의 내용에 따라 첫째, 절의 유래를 노래한 시 둘째, 절 주변 풍경을 노래한 시 셋째, 절을 노래한 시 넷째, 절의 장로(長老)와의 교유를 노래한 시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1. 절의 유래를 노래한 시
백사(白沙) 윤훤(尹暄)[1573~1627]의 「인빈헌내주잡영(寅賓軒萊州雜詠)」이 범어사의 유래를 묘사한 대표적인 칠언 절구의 한시이다.
산정금어종석우(山頂金魚縱石盂)[산마루엔 금빛 고기가 돌그릇에서 노는데]
문거나득수원구(問渠那得水源俱)[그대 묻노라, 이 냇물의 수원이 어디서 생겼는가를]
선림해차당시사(禪林解借當時事)[스님들은 당시의 일을 빌려올 줄 알아서]
보우임궁회법도(寶宇琳宮會法徒)[보배롭고 아름다운 전당에 법도들을 모은다지].
동래 부사를 지냈던 윤훤의 이 시는 『삼국유사』의 ‘금정지범어(金井之梵語)’의 유래를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2. 절 주변 풍경을 노래한 시
범어사는 금정산 북동쪽 계곡에 있다. 금정산 자체가 승경일 뿐 아니라 범어사로 가는 계곡 역시 경치가 뛰어나다. 또 범어사 앞을 흐르는 범어천(梵語川)은 절로 가는 옛길을 따라 지나고 있어서, 선인들은 이 시내를 건너면서 속세의 때를 씻고 성스런 공간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이춘원은 「내주잡영에서 차운하다[次萊州雜詠]」에서 이렇게 읊었다.
수장고사기반우(誰將古事記盤盂)[누가 고사를 평평한 바위에다 적었는가?]
영악신어불세구(靈嶽神魚佛勢俱)[신령스러운 산과 신기한 시내로 절의 형세 갖추어졌네]
포지황금용토수(布地黃金龍吐水)[땅에 깔린 황금은 용이 토한 물임을]
천년존신중향도(千年尊信衆香徒)[천 년 동안 뭇 신도들은 존숭하여 믿는다네].
범어천을 따라 오르다가 어산교(魚山橋)를 건너 등나무가 늘어진 길을 지나면 절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안눌은 「범어사로 들어서는 골짜기 입구에서 짓다[梵魚寺洞口作]」에서 절 주변 풍경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반애섭석상찬완(攀崖躡石上巑岏)[언덕에 올라 바위를 밟고 높은 곳에 오르니]
곡구등전고목찬(谷口藤纏古木攢)[골짝 입구 등나무 얽히고 고목은 빽빽]
우습취병람기중(雨濕翠屛嵐氣重)[비 축축이 내려 비취빛에 아지랑이 첩첩]
풍명단학간성한(風鳴丹壑澗聲寒)[바람 우는 붉은 골짝 개울물 소리 차구나]
송음좌청유금어(松陰坐聽幽禽語)[솔 그늘에 낮아 들으니 그윽한 새 울음소리]
소갑환공석로찬(蔬甲還供釋老餐)[나물 다시 올리니 불가의 오랜 반찬이로다]
심정경공번일소(心靜境空翻一笑)[마음은 고요 절간도 고요한데 웃음 날리니]
십년진토오의관(十年塵土汚衣冠)[십 년의 티끌과 흙이 의관을 더럽혔었구나].
3. 절을 노래한 시
이안눌은 1609년 4월과 6월 10일 무렵 2차례 범어사에 방문하였다. 범어사 관련 한시를 20여 수 남겼는데, 특히 범어사에 머무는 동안 바라본 절의 모습을 읊은 시가 많다. 그중 「새벽에 일어나서 입으로 부르다[曉起口號]」는 절의 정경을 가장 산뜻하게 형상화한 작품으로 평가 받았다. 「범어사즉경(梵語寺卽景)」은 ‘우·청·조·석·주·야(雨·晴·朝·夕·晝·夜)’의 6수 연작시 형태로, 시간과 기후의 변화에 따라 변하는 범어사의 모습을 눈앞에 그린 듯 읊은 대표작이다.
첫째 시는 비가 올 때[雨]의 풍경을 읊은 것이다.
비비람취습(霏霏嵐翠濕)[비가 내려 아지랑이 비취빛으로 젖었고]
유류송뢰번(瀏瀏松籟繁)[바람 불어 소나무엔 퉁소 소리 무성하네]
불지산우밀(不知山雨密)[산속에 비 많이 온 줄 몰랐더니]
단괴계수훤(但怪溪水喧)[괴이하게도 계곡물만 시끄럽네].
둘째 시는 비가 오고 난 뒤[晴]의 풍경을 읊은 것이다.
우파산경신(雨罷山更新)[비 그친 산 새롭디 새로워]
중록윤여목(衆綠潤如沐)[우거진 풀 나무 매끈하게 목욕한 듯]
백운홀분피(白雲忽紛披)[흰 구름 흩어져 열리자마자]
청욱산림록(淸旭散林麓)[맑은 빛 숲 속으로 흩어지네].
셋째 시는 범어사의 아침[朝] 풍경을 읊은 것이다.
운심불각서(雲深不覺曙)[구름 두터워 날이 샌 줄 몰라]
일출승상와(日出僧尙臥)[해가 떠도 스님은 일어나지 않네]
임구자다사(林鳩自多事)[숲 속 비둘기 혼자 일도 많아라]
격호명상화(隔戶鳴相和)[방문 밖에서 울며 서로 화답하네].
넷째 시는 저녁나절[夕]의 풍경을 읊은 것이다.
청람분해도(晴嵐噴海濤)[맑은 날 아지랑이 바다 물결 위에 뿜는데]
백일미산경(白日迷山逕)[한낮 동안 산속 작은 길을 헤매다가]
좌간숙조귀(坐看宿鳥歸)[앉아서 둥우리로 돌아가는 새를 보곤]
인득임학명(認得林壑暝)[숲과 골짜기 어두워진 줄 알았네].
다섯째 시는 낮의 풍경[晝]을 읊은 것이다.
지격인불래(地闃人不來)[선계의 문턱 사람은 오지 않고]
승한주자영(僧閑晝自永)[스님 한가롭고 낮은 절로 길어라]
산거무각루(山居無刻漏)[산에서 지내니 시각 알 수 없더니]
일오변림영(日午辨林影)[나무 그림자에 한낮인 줄 알았네].
여섯째 시는 한밤중의 풍경[夜]을 읊은 것이다.
송월발고조(松月發孤照)[소나무 위 달빛은 홀로 비추고]
계풍식중규(溪風息衆竅)[시내 바람 골골마다 쉬고 있네]
야입산기한(夜入山氣寒)[밤이 되니 산 공기 차가워지고]
경금시일규(驚禽時一叫)[놀란 새 때때로 우는구나].
이 밖에도 범어사 경내의 보제루(普濟樓)를 읊은 오희창(吳喜昌)의 시, 범어사 범종을 읊은 정인준(鄭寅俊)의 「범어사의 새벽종을 읊다[梵語寺曉鐘]」 등이 절을 노래한 시에 속한다.
4. 절의 장로와의 교유를 노래한 시
범어사를 노래한 시 중에는 절의 장로들과 주고받은 시들이 있다. 이들과 주고받은 시의 내용은 단순히 인간적 교유 측면을 넘어 절의 주지로서 절을 관리하고 재건하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이안눌이 묘전상인(妙全上人), 혜정장로(惠晶長老), 지안상인(智安上人), 도원상인(道元上人) 등에게 5편의 시를 주었고, 장로들과 관련된 시 또한 몇 편이 있다. 전자의 경우는 「증혜정장로(贈惠晶長老)」, 「증묘전상인(贈妙全上人)」, 「증지안상인(贈智安上人)」, 「증도원상인(贈道元上人)」 등이 그것이다. 후자는 「정화상설반이시사지(晶和尙設飯以詩謝之)」, 「사혜정장로이신감채견기(謝惠晶長老以辛甘菜見寄)」, 「사혜정장로기혜(謝惠晶長老寄鞋)」」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범어사의 제1대 주지인 묘전상인에게 준 「범어사에서 묘전상인에게 주다[梵魚寺贈妙全上人]」에서는 임진왜란으로 피해를 입은 범어사의 중건 작업에 대한 언급도 보인다.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장책행심고불당(杖策行尋古佛堂)[지팡이 짚고 걸어서 옛 불당을 찾는데]
계두소경입총황(溪頭小逕入叢篁)[시냇가 작은 길은 대숲으로 들어가네]
부생반일투한지(浮生半日偸閑地)[뜬구름 같은 삶이라 종일 한가하게 지내는데]
각견산승반일망(却遣山僧半日忙)[산승은 도리어 종일 분주하게 보내는구나].
이 밖에 장로와 관련된 시에서는 이안눌의 장로들과의 개인적 교유와 불교에 대한 그의 입장이 잘 드러나 있다. 이안눌이 범어사에 머무는 동안 혜정장로의 방에 기거하면서 장로가 손수 만든 음식을 대접 받을 만큼 격의 없는 교유를 했다. 「정화상이 밥을 베풀기에 시로 감사드리다[晶和尙設飯以詩謝之]」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범어고정사(梵魚古精舍)[범어사는 옛 절인데]
노승명혜정(老僧名惠晶)[늙은 중은 이름이 혜정이라네]
아래숙기방(我來宿其房)[내가 그의 방에 와서 묵는데]
신기구반갱(晨起具飯羹)[새벽에 일어나 밥과 국을 마련하네]
[중략]
담박선가미(淡泊禪家味)[담백한 스님들의 음식 맛에]
세진진루영(洗盡塵累嬰)[속세의 얽매임이 다 씻겼도다]
일소사화상(一笑謝和尙)[한 번 웃으며 화상께 고마워하고]
포찬감소성(飽餐感素誠)[넉넉한 음식과 정성에 감동하네]
방장신비원(方丈信非願)[풍성한 음식은 진실로 바라는 바 아니요]
만복기구영(滿腹豈求贏)[배부른데 어찌 남은 것을 바라겠는가]
인생차가악(人生此可樂)[사람 사는 데에는 이것이 즐거움인데]
돌피오정팽(咄彼五鼎烹)[오호라 저 오정팽을 당하는 자들이여].
[의의와 평가]
범어사를 노래한 시들은 양적으로는 적지 않으나, 질적으로는 그리 높은 수준의 것이 아니라 하겠다. 사찰과 관련된 시이지만 불교나 불사에 대한 깊은 인식을 드러낸 작품이라 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현존하는 범어사 관련 한시가 조선 시대 창작된 것이 많고, 조선이 유교를 국시로 삼은 나라였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