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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를 노래한 고전 문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0036
한자 加德島-古典文學
영어의미역 Classical Literature Singing the Gadeok Island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강서구 천성동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권정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사항 시기/일시 1401년연표보기 - 「조풍설(阻風說)」
특기사항 시기/일시 1402년연표보기 - 「웅천가덕도(熊川加德島)」
특기사항 시기/일시 조선 전기연표보기 - 「차가덕운(次加德韻)」
특기사항 시기/일시 조선 전기연표보기 - 「가덕운(加德韻)」
특기사항 시기/일시 조선 전기연표보기 - 「가덕해중차군미운(加德海中次君美韻)」
관련 장소 가덕도 -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 일대지도보기

[정의]

조선 전기 부산의 가덕도를 대상으로 지은 한시나 산문 등의 문학 작품.

[개설]

가덕도(加德島)’라는 명칭은 예로부터 섬에서 더덕이 많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가덕도 일원은 예전에는 웅천현(熊川郡)[현재 경상남도 진해시 웅동]에 속했던 곳이다. 1914년 경상남도 창원시 천가면(天加面)에 속했다가 1980년 의창군 천가면에, 1984년에는 부산직할시 강서구로 편입하였다. 이 지역 사람으로는 낭선(浪仙)으로 불리던 어무적(魚無跡)이 대표적인 문인이나, 가덕도를 노래한 작품을 남긴 것은 없다. 다만 외지인이 이곳을 지나면서 읊은 작품이 약간 남아 있을 뿐이다. 가덕도를 노래한 고전 문학 중 현재 남아 있는 것은 한시 4편과 산문 1편 정도이다.

[가덕도를 노래한 한시]

가덕도를 노래한 한시는 4편이 있다. 조선 전기 교은(郊隱) 정이오(鄭以吾)[1347~1434]의 「웅천가덕도(熊川加德島)」, 졸옹(拙翁) 홍성민(洪聖民)[1536~1594]의 「차가덕운(次加德韻)」과 「가덕운(加德韻)」, 그리고 구촌(龜村) 류경심(柳景深)[1516~1571]의 「가덕해중차군미운(加德海中次君美韻)」이 그것이다.

내용은 가덕도에서 바닷가 풍경을 읊은 시, 끝없는 바다를 보면서 느낀 자연의 영원성과 이와 상반되는 인간의 무한성을 노래한 시, 그리고 임진왜란을 추억하며 충군려민(忠君慮民)하는 마음을 노래한 시 등이 대부분이다.

이 중 정이오의 「웅천가덕도」는 1401년 평소 친분이 두텁던 박덕공이 제주 목사로 임명되어 갈 때 병조 의랑[정 4품]으로 함께 제주도로 갔다가 1402년 한식(寒食)[동지 이후로 부터 105일째 되는 날] 무렵 고향 근처인 웅천 가덕도에 도착하여 지은 시이다.

* 정이오, 「웅천가덕도」

한식광음고도두(寒食光陰古渡頭)[한식(寒食) 시절 옛 나루터에]

난파평초사인수(亂波平楚使人愁)[어지러운 물결과 질펀한 숲이 사람을 시름겹게 하네]

백년성시인하재(百年城是人何在)[백 년 넘은 성 여기인데 사람은 어디 갔나]

왕사무유문백구(往事無由問白鷗)[지난 일 알 길 없어 백구(白鷗)에게 묻노라].

이 시에서 부평초처럼 파도에 몸을 맡긴 신세는 웅천현의 유랑민 신세를 이야기하는 것인지 작자의 심정을 가탁한 것인지 분명치 않으나, 백 년 전 웅천현의 모습을 알 길이 없어 무심한 갈매기에게 묻는다는 허탈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왜구의 침략으로 남해안 대부분의 현과 섬의 주민들이 유랑민으로 흩어져 황폐하게 된 모습을 목격하고 읊은 시이다.

[가덕도를 노래한 산문]

가덕도를 노래한 산문으로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정이오의 「조풍설(阻風說)」 1편이 있다. 「조풍설」은 정이오가 1401년 6월, 제주 목사로 부임하기 위해 제주도로 향하던 박덕공(朴德公)의 함선을 타고 남쪽으로 가던 중 겪은 일을 자세히 묘사하고 깨달은 바를 적은 것이다. 제주도로 향하기 위해 가덕도를 출항하면서 풍랑을 만나 고통을 겪은 상황을 「조풍설」에 실감나게 담아 놓았다. 대략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덕도는 웅천현에 위치하고 있고, 북쪽에 내례항이라는 포구가 있다. 때는 6월의 한여름, 박덕공은 제주 목사로 부임하기 위해 남쪽으로 향하였다. 박덕공의 함선을 타고 항해하던 작자는 바위와 수목이 울창한 가덕도의 서편에 정박해 쉬게 되었는데, 갑자기 성난 회오리를 일으키며 동풍이 불어와 돛대가 기울고 노가 꺾이게 되었다. 이때 박공의 막료 김원덕(金元德)의 배는 바다의 중류에 머물다가 바람에 휩쓸려 거제도에 이르렀다가 저물녘 거세게 몰아친 비바람에 다시 중류로 떠내려가게 되었다. 긴박한 상황에서 박덕공은 하늘에 제사하고 신명께 기도했는데, 기도의 영험 때문인지 동풍이 서풍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로 인해 김원덕의 배는 정박할 수 있게 되었으나, 이미 정박해 있던 전라 원수 진원세(陳元世)와 군졸이 타고 왔던 함선은 파손되고 말았다.”

이 일을 본 정이오는 “동풍이 서풍으로 바뀌자 어떤 배는 모면하게 되고, 또 정박해 있던 다른 배는 파손하게 된 것은 ‘하늘의 도가 고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고, 인명(人命)을 구하려는 만물을 살게 하는 마음 때문’이다”고 느낀 바를 말하였다. 즉 ‘천지의 기운과 천지의 마음 그리고 인간의 마음은 성(誠)으로 관통한다’는 것이다.

「조풍설」은 가덕도를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가덕도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보다는 가덕도에서 겪은 일을 통해 자신의 성리학적 세계관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하겠다.

[의의 및 평가]

가덕도는 옛 웅천현에 속하는 섬으로, 교통이 불편하던 시대에는 관광 목적으로 일부러 찾는 명소(名所)이기보다는 제주도를 가는 길에 혹은 풍랑을 만나 우연히 들리게 된 곳 정도였다. 그러므로 가덕도를 노래한 고전 문학은 작품 수가 많지 않고, 내용 또한 다양하지 않다. 임진왜란과 관련한 슬픔을 노래한 작품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공간적 배경으로서의 가덕도를 노래하고 있을 뿐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장소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덕도가 배경이 된 작품을 통해 선인들의 눈에 비친 가덕도의 옛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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