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9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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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魚- |
영어의미역 | Sameo Village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동 삼어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주영택 |
성격 | 자연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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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14년 - 경상남도 동래군 동래읍 반여동 |
변천 시기/일시 | 1942년 - 경상남도 동래군 동래읍 반여동에서 경상남도 부산부 동래출장소 반여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57년 - 경상남도 부산부 동래출장소 반여동에서 경상남도 부산시 동래구 반여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78년 - 경상남도 부산시 동래구 반여동에서 부산직할시 해운대출장소 반여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80년 - 부산직할시 해운대출장소 반여동에서 부산직할시 해운대구 반여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 부산직할시 해운대구 반여동에서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 4동으로 개편 |
자연 마을 | 삼어 마을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 4동 삼어 마을 |
[정의]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동에 있는 자연 마을.
[명칭 유래]
삼어(三魚) 마을의 명칭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전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마을에서 어사가 세 사람 나와 붙여진 이름이라는 견해가 있다. 마을 내 어사탑[돌탑]이 강변 도시 고속 도로 쪽[탑거리로 불림]과 반여 아파트 안, 대우자동차 출고장 자리에 3기가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본래 삼어의 어는 ‘천자 어(御)’ 자를 사용했는데, 일제 강점기 때 마을 이름에 어(御) 자 사용을 금지해 ‘고기 어(魚)’ 자로 바꾸었다고 전한다. 다음으로는 마을 앞을 흐르는 강에서 봄철에는 황어, 여름철에는 은어, 가을철에는 연어 등 세 종류 고기를 잡았다 하여 삼어(三漁)라 했다고도 한다.
[형성 및 변천]
삼어 마을에 반여동 고분군(盤如洞古墳群)[해운대구 반여 4동 산345| 해운대구 반여 4동 345-1번지]이 자리하여 일찍부터 거주지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삼어 마을의 명확한 형성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800년경 서당 훈장 송 선생이 재산을 마을에 기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조선 후기부터 있었던 마을임을 알 수 있다. 마을이 속한 지역은 조선 후기 동래부 동면에 속하였다가 이후 동상면으로 분리되었으며, 1914년 동래읍 반여동에 속하였다.
1942년 부산부 동래출장소에 속하였으며, 1957년 동래구에 속하였다. 1978년 해운대출장소에 편입되었으며, 1980년 해운대출장소가 해운대구로 승격하였다. 1980년 마을이 준공업 지구로 선정되며 삼공피혁[현대아파트 자리], 프리나 사료[일동 아파트 자리], 우성화학[우신아파트 자리], 범양사[신동 아파트 자리], 삼화방직[우방 아파트 자리] 등의 공장이 들어섰다. 1995년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승격하면서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 4동 삼어 마을이 되었다. 2000년대 공장이 교외 지역으로 이전하며 공장 부지에 고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자연 환경]
삼어 마을 동쪽에는 위봉에서 남서쪽으로 뻗은 산줄기가 자리하며, 서쪽으로 수영강이 흐른다. 마을은 하천변 평지에 자리하고 있다.
[현황]
삼어 마을은 해운대구 반여 4동 1~2통에 속한 지역으로 반여·창신 아파트 일대이다. 마을 동쪽 산지에 반여동 고분군[청동기 시대의 취락상과 가야 시대 전기부터 중·후기에 이르기까지 가야 고분의 변천상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 발굴]이 있으며, 삼어 마을 당산이 있어 매년 1월과 10월 초순 자정에 제를 올린다. 또한 동쪽 산기슭에 ‘선략장군 부사과 달성 서공 후봉지묘(宣略將軍副司果達城徐公後逢之墓)’, ‘가선대부 행오위장 인동 장씨지묘’, ‘가선대부 동래 정씨지묘(嘉善大夫東萊鄭氏之墓)’[문익점 11세손] 등의 묘소가 있고, 여산 송씨(礪山宋氏)와 동래 정씨(東萊鄭氏)의 재실이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