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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8986
영어의미역 Borijin Village
이칭/별칭 포이포(包伊浦),보리전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수영구 민락동 보리진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선석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자연 마을
변천 시기/일시 1904년 - 덕민리를 덕민동으로 명칭 변경하고 동래부 남상면에 편입
변천 시기/일시 1914년 - 동래부 남상면 덕민동에서 부산부 용주면 민락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42년 - 부산부 용주면 민락리에서 부산부 수영출장소 민락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57년 - 부산부 수영출장소 민락동에서 부산시 동래구 민락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75년 - 부산시 동래구 민락동에서 부산직할시 남구 민락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95년 - 부산직할시 남구 민락동에서 부산광역시 수영구 민락동으로 개편
자연 마을 보리진 마을 - 부산광역시 수영구 민락동 보리진 마을

[정의]

부산광역시 수영구 민락동에 있는 자연 마을.

[명칭 유래]

조선 후기 경상 좌도 수군절도사영 관하의 만호영 중 하나인 포이포 만호영(包伊浦萬戶營)에서 보리진이라는 마을 이름이 생겨났다. 일설에는 보리를 팔던 가게[廛]들이 있어 보리전이라고 불렀는데, 여기에서 보리진이란 지명이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형성 및 변천]

1652년(효종 3) 경상 좌도 수군절도사영과 함께 옮겨 온 포이포 만호영은 백산 북쪽에 위치하였다. 『동래부지(東萊府誌)』[1740]에 포이포리(包伊浦里) 마을이 있었다고 하는데, 포이포 만호영 부근에 수군(水軍) 가족들이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포이포리가 훗날 보리진 마을로 불리게 되었으며, 1871년(고종 8)경 덕민리로 고쳐 부르고, 1904년(고종 41) 덕민동으로 명칭이 변경되며 동래부 남상면에 편입되었다.

일제 강점기인 1914년 평민동과 합쳐져 민락리(民樂里)가 되어 부산부 용주면에 편입되었다. 1942년 민락동으로 바뀌어 부산부 수영출장소에 편입되었다. 광복 이후 1949년 부산부가 부산시로 행정 제도가 개편되었다. 1957년 부산시에 구제(區制)가 실시되면서 민락동동래구에 편입되었다. 1975년 남구가 신설되어 이에 편입되었다가 1995년에 부산광역시로 개편되면서 수영구가 신설되어 부산광역시 수영구 민락동 보리진 마을이 되었다.

[자연 환경]

보리진 마을은 백산의 북쪽과 동쪽에 위치하며, 금련산에서 발원하는 대천(大川)이 수영강 하구에서 합류하는 지점이다. 이곳은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으로 어자원이 풍부하여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은데, 지인망(地引網)과 자망(刺網), 수조망 어업(水槽網漁業) 및 채조업(採藻業) 등의 다양한 어법(漁法)이 행해진 어촌 마을이었다.

[현황]

보리진 마을은 보리전이라고도 불렸다. 부근에 광기전 마을 등이 있어 해산물과 농산물이 교환되는 시장이 형성되는 어촌이었으나,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현재 백산의 북쪽 산자락은 밭으로, 동북쪽 언덕 위에는 고급 주택과 빌라 등이 들어서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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