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8563
한자 長田-長田里-
영어의미역 Jangjeon Village[Jangjeon-ri]
이칭/별칭 장밭 마을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장전리 장전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전영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자연 마을
변천 시기/일시 1895년 - 기장군 상서면 장전동
변천 시기/일시 1914년 - 경상남도 동래군 철마면 장전리
변천 시기/일시 1973년 - 경상남도 동래군 철마면 장전리에서 경상남도 양산군 철마면 장전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6년 - 경상남도 양산군 철마면 장전리에서 경상남도 양산군 동부출장소 철마면 장전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95년 - 경상남도 양산군 동부출장소 철마면 장전리에서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장전리로 개편
자연 마을 장전 마을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장전리 장전 마을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장전리에 있는 자연 마을.

[명칭 유래]

옛날 역(驛)의 우두머리가 되는 역장의 공비(公費)에 충당하기 위하여 지급된 토지를 장전(長田)이라 하는데, 속칭 장밭이라 하였다. 숙종 때 이곳에서 귀양살이하던 선비와 동행한 김해 김씨(金海金氏) 일족이 정착하여 전답을 개간하였는데, 그때 개간된 밭이랑이 길게 형성되었다고 하여 장밭, 곧 장전(長田)이라 하였다고도 한다.

[형성 및 변천]

장전 마을[장전리]은 조선 숙종 대에 김해 김씨 일족이 처음으로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차성가(車城歌)」에 “장전(長田)의 누운 말니[이] 와려(臥驢)가 그 안[아]니며”라고 하여 장전이란 지명이 나온다. 『기장현읍지(機張縣邑誌)』[1831]에 마을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1895년(고종 32) 동래부 기장군 상서면 장전동이 되었다.

『경상남도 기장군 가호안』[1904]에는 상서면 장전동대곡동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 기장군 남면 장전동에는 27호가 살고 있었다. 집은 대개 초가 2~3칸이다. 27호 가운데 김씨가 23호나 되는 것으로 보아 김씨 집성촌을 형성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1914년 지방 제도 개편에 따라 기장군 상서면 대곡동 일부와 장전동이 합쳐져서 동래군 철마면 장전리가 되었다. 1973년 동래군이 양산군에 병합되면서 양산군 철마면에 속하였다. 1986년 양산군 동부출장소가 설치되어 그 관할이 되었다. 1995년 부산광역시로 편입되면서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장전리 장전 마을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자연 환경]

장전 마을 북쪽 뒷산이 도독고산이다. 마을 내에 철마천이 지나간다. 남서쪽에 장년산이 있다.

[현황]

장전 마을기장군 철마면 장전리 355번지 일대 12통 지역에 있는 자연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 장전교라는 다리가 있고, 산을 따라 장전 계곡이 있다. 표지석에서 도로를 따라 조금만 가면 장전 마을 회관이 있는데, 2층에 장전 노인정이 있다. 마을에 장전상조회가 있고 철마교회, 장전 식육점, 기장군 농공 단지가 있다. 마을 북쪽에 있는 와여리 쪽으로 가다 보면 길 왼쪽 언덕에 해주 오씨(海州吳氏) 판관공파(判官公派) 종중회(宗中會)에서 관리하는 구산단(龜山壇)·의용당(義勇堂)이 있다. 건물 한쪽 현판에는 ‘구산 서당(龜山書堂)’이라고 쓰여 있다.

장전교 입구에는 철마 한우 단지 표지판이 크게 나타난다. 계곡 앞 길 옆에 「장전 구곡가(長田九曲歌)」를 쓴 시비가 있다. 장전 마을이라고 쓴 표지석이 길 오른쪽에 서 있다. 표지석 뒤에는 장밭골이라고 써 있다. 길 왼편 언덕에는 1990년에 세운 김해 김후서 강공파 서당곡가 합사 제단(金海金后西岡公派書堂谷家合祀祭壇)이 있다. 표지석을 옆으로 마을 안으로 들어오면 체육 시설을 해 놓은 공터가 나타나고, 체육공원 안에 ‘장전 마을 노래비’가 서 있다. 이 노래비에 장전의 옛 이름은 장발이며, 장전은 역장전(驛長田)을 뜻하고, 1689년(숙종 15) 김해 김씨 일족이 처음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다고 마을의 유래를 적고 있다.

장전 마을 노래비는 이 마을 출신인 남전 안대영이 작사·작곡하였다. 가사는 “운봉산 정기 받아 굽이굽이 정전 구곡천/ 창조의 슬기로서 한데 뭉친 역군들이/ 튼튼한 몸 맘으로 서로 돕고 뜻을 모아/ 오늘의 알찬 보람 근검 속에 이루도다/ 아! 아! 우리 마을 우리 낙원/ 그 이름 장전 장전 영원히 기리리”이다.

참고로 「장전 구곡가」는 기장 향토 문학의 꽃이라 할 만큼 수준 높은 문학 작품이다. 이는 중국 송나라 주자(朱子)가 중국의 유명한 무이 구곡(武夷九曲) 전경(全景)을 구경하고 읊은 「무이 구곡가」를 본 따 1902년(고종 39) 기장군 철마면 와여리 출신 종2품 가선대부 중추 의관과 내장원경[지금의 청와대 재정 담당관]을 역임한 해주인(海州人) 추파(秋波) 오기영(吳璣泳)이 지은 것이다. 오기영은 석양에 말 세 마리가 이끄는 마차를 타고 금의환향하면서 금정구 오륜대(五倫坮)를 서시(序詩)로, 일곡(一曲) 선동(仙洞)을 시작으로 구곡(九曲) 홍류동천(虹流洞天)까지 아홉 굽이 휘돌아 흐르는 아름다운 구곡천 전경을 기승전결(起承轉結)의 문체로 읊었다. 마을의 주업은 논농사인 벼농사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