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85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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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元竹- |
영어의미역 | Wonjuk Village |
이칭/별칭 | 염분리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원죽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공태도 |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에 있는 자연 마을.
[명칭 유래]
원죽(元竹) 마을의 옛 이름은 염분리(鹽盆里)이다. 소금을 생산하는 소금밭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후 소금밭이 없어지며 죽성(竹城)이라 불렸다고 한다. 이곳에 신라 시대 축조된 고성(古城)이 있는데 주변에 대[竹]가 많은 데서 유래된 지명이다. 법정리인 죽성리와 구분하기 위해 마을이 ‘원래 죽성’이라는 의미로 원죽이 되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원죽 마을은 형성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소금을 생산하는 염분(鹽盆)[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굽는 가마]이 있는 곳에 형성되었다고 한다. 원죽 마을이 속한 지역은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1469]에 “수군만호(水軍萬戶)가 수비하고 있다”라는 기록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에는 “두모포영”에 대한 기록이 있어 조선 전기부터 군사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염분리라는 지명은 『기장읍지』[1754년에서 1839년 사이에 발간]에 읍내면에 속한 동명으로 처음 확인된다. 마을이 속한 지역은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는 기장현 읍내면 두모포로 기록되어 있으며, 1895년(고종 32)에는 동래부(東萊府) 기장군 읍내면 두호동 염분리였다.
1914년 동래군으로 귀속되며 월전동과 병합하여 기장면 죽성리 죽성 마을이 되었다. 1973년 경상남도 양산군에 통합되었다가, 1980년 양산군 기장면이 기장읍으로 승격하였고, 1986년 양산군 동부출장소 관할이 되었다. 1995년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원죽 마을이 되어 현재에 이른다. 염분리에서 죽성 마을 이후 원죽 마을로 명칭이 변화된 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자연 환경]
원죽 마을은 북서쪽의 모산[101m]에서 동쪽으로 이어진 산지가 북동쪽에서 남쪽으로 휘어져 북쪽 전체를 감싸고 있으며, 남쪽에는 봉대산[229m]이 자리하고 있다. 남북의 두 산지 사이로는 죽성천이 동으로 흘러 동해 바다로 유입된다. 남북의 두 산지에서 발원한 소하천은 각각 남쪽과 북쪽으로 흐르며 죽성천에 흘러들고, 죽성천 주변은 평지가 나타난다. 동쪽은 죽성천이 유입하는 만입부로 큰 섬, 큰거무 섬 등이 있다.
[현황]
원죽 마을은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20번지 일대로, 두호 마을의 북쪽에 있다. 두호 마을에서 북쪽으로 죽성천 하류를 따라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마을에는 죽성 소나무 횟집·죽성 짚불 곰장어 등 죽성이란 이름을 가진 가게가 많이 보인다. 원죽 마을은 해안에서 죽성천의 남쪽 강변을 따라 발달한 원죽 1구와 죽성천 북쪽에 있는 원죽 2구로 구분된다.
원죽 1리는 반농반어의 마을로 죽성초등학교 북쪽으로 원죽 1구 마을 회관이 있다. 원죽 2구는 신앙 공동체인 신앙촌(信仰村)이 있어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 신앙촌은 1970년 2월 28일 당시 50여 개의 생산 공장과 5,000여 명의 교인의 입주로 형성되었다. 마을에는 한국천부교전도관유지재단으로 한일물산·시온식품·시온합섬·신앙촌식품·생명물두부의 공장과 우편 취급소, 부설 시온식품과학고등학교가 있다. 마을 주민 100%가 마을 내의 회사에 근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