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8495 |
---|---|
한자 | 新里-五里- |
영어의미역 | Sinri Village[O-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오리 신리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맹인섭 |
성격 | 자연 마을 |
---|---|
변천 시기/일시 | 1681년 - 기장현 상북면 하미면 |
변천 시기/일시 | 1895년 5월 26일 - 기장군 상북면 오동 |
변천 시기/일시 | 1914년 - 기장군 상북면 오동에서 동래군 장안면 오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73년 - 동래군 장안면 오리에서 경상남도 양산군 장안면 오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85년 - 장안면이 장안읍으로 승격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 부산광역시에 편입되며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오리 신리 마을이 됨 |
자연 마을 | 신리 마을 -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오리 신리 마을 |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오리에 있는 자연 마을.
[명칭 유래]
장안 지역에는 400여 년 전 반룡·기룡·장안·명례 등에 여러 방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 가운데에서 신리방(新里坊)[행정 지명]이 가장 늦게 그리고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여 생성된 이름인데, 이것이 그대로 마을 이름으로 남게 된 것이다.
[형성 및 변천]
신리(新里) 마을[오리]은 약 400년 전 진양 하씨(晉陽河氏)가 갈대밭을 개간하여 전답을 만들고 정착해 살면서 형성된 마을로 전한다. 오리의 자연 마을 중 가장 크고 오래된 마을이다. 신리 마을이 속한 오리는 1681년(숙종 7) 기장현에 환속되면서 기장현 상북면 신리방이 되었고, 신리라는 마을 이름은 1830년경부터 사용되었다. 신리가 속한 오리는 1895년(고종 32) 5월 26일 을미개혁 때 기장군 상북면 오동(五洞)으로 명칭이 부여되었으며, 1914년 3월 1일 동래군 장안면 오리, 1973년 7월 1일 경상남도 양산군 장안면 오리가 되었다. 1985년 10월 1일 장안면이 장안읍으로 승격하였으며, 1995년 3월 1일 부산광역시에 편입되면서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오리 신리 마을이 되어 현재에 이른다.
[자연 환경]
효암천의 서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의 북서쪽에 낮은 산지가 위치해 있다. 취락은 북서쪽 산지의 구릉지에 위치해 있다. 남쪽으로는 저수지인 신리지와 망어들, 정맥이들 등 평지가 있고, 남동쪽과 동쪽으로도 평지가 나타난다.
[현황]
신리 마을 내에 마을 회관과 동래원예고등학교 장안 실습 농장, 남원 양씨(南原梁氏) 신리 문중(新里門中) 재실인 영훈재(永薰齋)가 있다. 마을의 서쪽에는 기장 대로·부산~울산 간 고속 도로가 있으며, 북쪽으로 금산사·문정 농원, 동쪽으로 개천 마을이 있다. 마을 서남쪽 산 아래에 신리 골매기 할매당이 있어 매년 정월 14일 자정에 제를 지낸다. 마을 주민의 주업은 축산 및 채소, 유실수 재배 등 농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