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84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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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上長安- |
영어의미역 | Sangjangan Village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장안리 상장안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맹인섭 |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장안리에 있는 자연 마을.
[명칭 유래]
상장안(上長安)은 마을 북동쪽 장안천 상류에 신라 문무왕 13년인 673년에 창건된 장안사(長安寺)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장안사로 가는 길 위쪽에 있는 마을을 상장안, 아래쪽에 있는 마을을 하장안으로 불렀다. 장안사가 있기 이전부터 장안이라는 명칭이 쓰였다고도 하나 기록상 확인되지 않는다.
[형성 및 변천]
상장안 마을 북동쪽에 있는 장안사가 673년 쌍계사로 창건하여 809년(애장왕 10)에 장안사로 개칭되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거주 역사가 오래된 지역임을 알 수 있으나, 현재 확인 가능한 역사는 임진왜란 때이다. 김해 김씨(金海金氏) 14대조인 김대현(金大鉉)이 임진왜란을 피하여 들어와 정착하였다고 하며, 묘와 비석이 남아 있다.
임진왜란 후인 1599년(선조 32) 기장현 상북면(上北面) 장안방(長安坊)에서 울산군 하미면(下味面) 장안방이 되었으며, 1653년(효종 4) 기장현 상북면 장안방이 되었다가 1660년(현종 1) 다시 울산군으로, 1681년(숙종 7)에는 기장현 상북면 장안방으로 환속하였다. 1895년(고종 32) 5월 26일 을미개혁으로 동래부 기장군 상북면 장안동이 되었다. 『경상남도 기장군 가호안』[1904]에 장안동(長安洞)에는 32호가 살고 있으며, 이 중 김씨가 10호로 가장 많고, 박씨 8호, 구씨 4호라고 기록되어 있다. 1914년 3월 1일 동래군 장안면 장안동, 1973년 7월 1일 경상남도 양산군 장안면 장안동이 되었다. 1985년 10월 1일 장안면이 장안읍으로 승격되었다가, 1995년 3월 1일 부산광역시에 편입되면서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장안리 상장안 마을이 되었다.
상장안 마을 구역 내에 있는 속칭 박칭이골 및 청룡골에 1948년경까지 작은 마을이 산재해 있었으나, 공산당의 출몰로 주민들이 철수하며 상장안 마을로 이주하였다. 장안사를 찾는 관광객의 증가로 상업 인구가 증가하면서 마을이 이전보다 점점 넓어지고 있다.
[자연 환경]
상장안 마을은 장안천의 상류에 위치한 마을로, 북서쪽에는 기장 팔경의 하나인 불광산(佛光山) 금수동이 있다. 금수동 계곡의 남쪽에는 바위가 많았다. 옛날 이 바위 가운데 한 바위의 중앙에 항상 물이 고여 있었는데, 여기에 돌을 던져 넣으면 아들을 낳는다고 전해져 많은 여성이 찾았다고 한다. 금수동 계곡에서 흘러내린 장안천은 마을 남쪽을 지나며 동쪽으로 흘러간다. 북쪽으로는 낮은 산지가 있으며, 마을과 북쪽 산지 사이에 마방들 터가 있어 농경지로 이용된다. 북서쪽에는 그릇을 굽던 큰 가마 다섯 기가 있었다 하여 오그랑 텃골로 부르는 골짜기가 있다.
[현황]
상장안 마을은 부산~울산 간 고속 도로의 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장안로가 지나간다. 마을의 북서쪽 불광산에는 기장 4대 사찰 중 하나인 장안사[장안리 598번지]가 있다. 마을 내에 마을 회관[장안리 413번지]이 있고, 마을 입구에 상장안 할매 당산이 있다. 본래 1년에 2회, 음력 1월 14일과 6월 14일 자정에 당산제를 지내다가 1995년부터는 매년 정월 14일 자정에 당산 할배제를 지낸다. 마을 주민들은 1980년대 초반까지만 농업에 종사하여 왔으나, 장안사 계곡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며 약 95%가량의 주민이 상업에 종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