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8446 |
---|---|
한자 | 䉠洞- |
영어의미역 | Midong Village |
이칭/별칭 | 미전 마을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 미동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전영섭 |
성격 | 자연 마을 |
---|---|
변천 시기/일시 | 1831년 - 기장현 상서면 미동 |
변천 시기/일시 | 1904년 - 경상남도 기장군 남면 웅천리 |
변천 시기/일시 | 1914년 3월 1일 - 경상남도 기장군 남면 웅천리에서 경상남도 동래군 철마면 웅천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73년 7월 1일 - 경상남도 동래군 철마면 웅천리에서 경상남도 양산군 철마면 웅천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86년 - 경상남도 양산군 철마면 웅천리에서 경상남도 양산군 동부출장소 철마면 웅천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3월 1일 - 경상남도 양산군 동부출장소 철마면 웅천리에서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 |
자연 마을 | 미동 마을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 미동 마을 |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에 있는 자연 마을.
[명칭 유래]
옛 이름은 고사리 밭, 즉 미전(薇田)이라 하였다. 옛날 이 마을에서는 부뚜막에서도 고사리가 난다고 할 만큼 고사리가 많이 자생하였다고 한다. 미동(薇洞)은 고사리 골을 가리킨다.
[형성 및 변천]
임진왜란 이후 남평 문씨(南平文氏)가 처음 정착한 후, 김해 김씨(金海金氏), 박씨(朴氏) 등이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다고 전한다.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차성가(車城歌)」에 “백이숙제 캐던 나물 미전(薇田)의[에] 푸러[르러]닛[있]고”라고 하여 미전이란 지명이 나온다. 1831년(순조 31)에 간행된 『기장현읍지(機張縣邑誌)』에는 기장현 상서면 미동(薇洞)·석길동이 기록되어 있다.
1904년(고종 41)에 간행된 『경상남도 기장군 가호안』에 의하면, 당시 기장군 남면 미동에는 15호가 살고 있었다. 집은 대개 초가 2~3칸 집이다. 와가(瓦家) 8칸 집이 가장 크고, 다음이 문상로(文象魯)·문재규(文在奎) 초가 5칸, 문여욱(文汝郁) 초가 4칸 순이다. 문씨[7호]가 가장 많이 살고, 다음이 김씨[3호], 박씨[2호] 순이다. 마을이 속한 지역은 1914년 3월 1일 지방 제도 개편에 따라 동래군 철마면 웅천리(熊川里)가 되었다. 1973년 7월 1일 동래군이 폐군되어 양산군에 속하였다. 1995년 3월 1일 기장군 복군과 함께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미동 마을 동쪽으로 아홉산이 있으며, 그 앞으로 철마천이 흐른다. 마을 북쪽에는 곰내재라는 고개가 있다. 고개 마루에 기장에서 손꼽이는 절경을 자랑하는 홍연 폭포가 있다.
[현황]
미동 마을은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 27번지 일대 5통 지역에 있는 자연 마을로, 중리 마을과 인접한다. 또 곰내재를 관통하는 곰내 터널이 만들어지면서 기장군 정관읍과 이어졌다. 미동 마을에는 유명한 아홉산 숲길이 있으며, 또한 남평 문씨 문의순(文義洵)이 ‘고사리를 보며 즐긴다’는 뜻으로 지은 관미헌(觀薇軒)이 있다. 마을의 주업은 논농사인 벼농사이며, 마을 입구에 한우 불고기집이 늘어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