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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8428
한자 麻旨-
영어의미역 Maji Village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연구리 마지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전영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자연 마을
변천 시기/일시 1904년 - 경상남도 기장군 남면 마지동
변천 시기/일시 1914년 - 경상남도 기장군 남면 마지동에서 경상남도 동래군 철마면 연구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73년 - 경상남도 동래군 철마면 연구리에서 경상남도 양산군 철마면 연구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6년 - 경상남도 양산군 철마면 연구리에서 경상남도 양산군 동부출장소 철마면 연구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95년 - 경상남도 양산군 동부출장소 철마면 연구리에서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연구리로 개편
자연 마을 마지 마을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연구리 마지 마을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연구리에 있는 자연 마을.

[명칭 유래]

옛날 마을에 삼밭이 있어서 마지(麻旨)의 마(麻)는 삼, 지(旨)는 재[치(峙), 고개]라는 뜻이다. 삼티가 삼지로 바뀌면서 마지로 변한 듯하다. 한편, 말이 머무는 곳인 말터[馬趾]가 있었는데, 마지(麻旨)로 잘못 쓰였다는 설도 있다.

[형성 및 변천]

임진왜란 후 동래 정씨(東萊鄭氏)가 먼저 정착하고, 후에 해주 오씨(海州吳氏)가 들어와서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차성가(車城歌)」에 “농상(農桑)을 힘을 신[쓰]니 마지(麻旨)가 무성하고”라고 하여 마지란 지명이 나온다. 1904년(고종 41) 간행된 『경상남도 기장군 가호안』에 의하면, 당시 기장군 남면 마지동에는 16호가 살고 있었다. 집은 대개 초가 2~3칸이다. 오재근(吳在根)의 초가 5칸 집이 가장 크고, 4칸 집은 2호이다. 정씨(鄭氏)[7호]가 가장 많이 살고, 다음이 오씨[4호]다.

1895년(고종 32) 동래부 기장군 상서면 연구동이 되었다. 1914년 동래군에 편입되며 철마면 연구리가 되었고, 1973년 동래군이 양산군에 병합되면서 양산군 철마면에 속하였다. 1986년 양산군 동부출장소가 설치되어 그 관할이 되었다. 1995년 부산광역시로 편입되면서 기장군의 복군으로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연구리 마지 마을이 되어 현재에 이른다.

[자연 환경]

마지 마을 서쪽으로 철마천[일명 장전천], 남쪽으로 이곡천이 흐른다. 동쪽과 북쪽으로 아홉산이 있다.

[현황]

마지 마을기장군 철마면 연구리 157번지 일대 7통 지역에 있는 자연 마을이다. 보림 마을과 연결되는 마지교를 건너 들어가면 길 오른쪽에 마지 마을 회관이 자리 잡고 있는데, 마지 마을 노인정과 함께 사용한다. 마을에는 조선 후기에 설립된 큰 서당이 있었다. 이 서당은 1924년 철마보통학교가 설립될 때까지 초급 학당으로 기초 학문을 가르쳤다. 구칠리 신리 마을에는 서당갓[산]과 서당 논이 있어서 거기서 나온 수입으로 서당을 운영하였다. 훈장도 초빙하여 『천자문(千字文)』, 『명심보감(明心寶鑑)』 등을 비롯하여 경서(經書)의 강독과 제술, 습자 등을 가르쳤다고 한다.

마지 마을에서는 마을 형국이 행선혈(行船血)이라 하여 돛대처럼 높은 장대를 세우고 고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 또 마을 입구에는 당산 나무와 마지 할매 당산이 있다. 당산 나무는 마을에서 동쪽 약 50m 지점의 팽나무[수령 200여 년]이다. 당산 나무 주변에는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다. 제는 1년에 1회, 음력 정월 14일 밤 자정경에 올린다. 제의는 당산 할배와 할매제만 지낸다. 마을 주업은 논농사인 벼농사이고, 부업으로 미나리, 화훼 작물을 길러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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