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83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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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谷- |
영어의미역 | Daegok Village |
이칭/별칭 | 한실 마을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장전리 대곡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전영섭 |
성격 | 자연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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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04년 - 경상남도 기장군 남면 대곡동 |
변천 시기/일시 | 1914년 - 경상남도 기장군 남면 대곡동에서 경상남도 동래군 철마면 장전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73년 - 경상남도 동래군 철마면 장전리에서 경상남도 양산군 철마면 장전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86년 - 경상남도 양산군 철마면 장전리에서 경상남도 양산군 동부출장소 철마면 장전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 경상남도 양산군 동부출장소 철마면 장전리에서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장전리로 개편 |
자연 마을 | 대곡 마을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장전리 대곡 마을 |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장전리에 있는 자연 마을.
[명칭 유래]
대곡(大谷)은 한실이라고도 불린다. 한실 마을의 한은 크다[大], 실은 골[谷]의 뜻이므로 대곡 마을이라고 불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차성가(車城歌)」에 “대곡(大谷)의 소순[솟은] 구름 운봉(雲峯)을 지엇도다.”라고 하여 대곡이란 지명이 나온다. 1895년(고종 32) 동래부 기장군 상서면 장전동이 되었다. 1904년(고종 41) 간행된 『경상남도 기장군 가호안』에 의하면, 당시 기장군 남면 대곡동에는 8호가 살고 있었다. 집은 대개 초가 2~3칸 집이다. 송씨[5호]가 가장 많이 살고, 다음이 문씨[2호] 순이다.
1914년 지방 제도 개편에 따라, 기장군 상서면 대곡동 일부와 장전동이 합쳐져서 동래군 철마면 장전리가 되었다. 1973년 동래군이 양산군에 병합되면서 양산군 철마면에 속하였다가, 1986년 양산군 동부출장소가 설치되어 그 관할이 되었고, 1995년 부산광역시로 편입되면서 기장군이 복군되어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장전리 대곡 마을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자연 환경]
대곡 마을 서북쪽으로 장년산이 있고, 북쪽으로는 철마천[일명 장전천]이 흐른다. 남쪽으로는 개좌산이 있다.
[현황]
대곡 마을은 기장군 철마면 장전리 73번지 일대 13통 지역에 있는 자연 마을이다. 장전 마을 안쪽 산기슭에 있는 마을이다. 철마면사무소가 있는 곳에서 금정구 회동동으로 가는 새로 생긴 큰 길을 따라 가다 보면 대곡 마을 표지석이 나온다. 길 오른쪽에 있는 개울을 따라 들어가면 대곡 새마을 회관이 있다. 개좌산을 뒤로 하여 개좌 고개를 넘어서 동래읍으로 다녔다. 개좌 고개가 있는 큰 계곡을 한실이라 한다. 지금은 금정구 회동동으로 도로가 연결되어 있다. 또 정관 신도시와 금정구 회동동을 연결하는 개좌곡 터널이 개통되었다.
개좌 고개에는 서홍인(徐弘仁)과 황구에 대한 전설이 내려온다. 이 고개는 옛날 철마에서 부산으로 통하는 유일한 산길이었는데, 그 근처 연구리에 서홍인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임진왜란 7년 전쟁이 끝나자 서홍인은 부산성에 있는 입방군의 군졸이 되었다. 노부모가 있어 입번을 마치면 집에 돌아와서 봉양하는 효자였다. 서홍인은 날이 밝기 전에 연구리에서 개좌 고개를 넘어 부산성까지 가서 입번을 마치고 다시 밤늦게 집에 돌아오곤 하였다. 이렇게 60리가 넘는 먼 길을 통근하였던 것이다. 그러자니 산길을 혼자 다니기가 외롭고 위험하여 누렁개 한 마리를 데리고 다녔다.
어느 봄날이었다. 입번을 마치고 여느 때와 같이 누렁개를 데리고 개좌 고개까지 와서 잠깐 쉬었다. 밤길을 60리나 걸어왔고 봄철이라 노곤하여 깜박 잠이 들었다. 그 사이 바위에 걸어 둔 횃불이 풀숲으로 번져 불이 났다. 이를 본 누렁개는 멍멍 짖기도 하고, 주인의 옷자락을 물고 끌어당기고 발톱으로 핥기도 하였다. 그러나 잠에 곯아떨어진 주인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그러자 누렁개는 계곡까지 달려가서 온몸에 물을 적셔 달려와서는 주인이 잠든 주위에 뒹굴었다. 이렇게 마른 풀숲에 물을 적셔 불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여러 번 되풀이한 누렁개는 지칠 대로 지쳐 더는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누렁개는 주인을 껴안고, 제 몸으로 번지는 불을 방지하려다 불에 타 죽고 말았다.
한참 뒤에 잠에서 깨어난 주인은 이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반이나 불에 그은 채 죽어 있는 누렁개는 온몸에 상처를 입었고 털은 불에 타버렸다. 특히 등이 불에 까맣게 탔다. 주인 대신 누렁개가 제 몸을 불에 태워 목숨을 바쳐 희생한 것을 알게 되었다. 주인은 그 자리에 누렁개의 시체를 고이 매장하고 방성통곡을 하였다. 이 충성스런 누렁개의 희생을 전해 듣고, 이 고개를 개가 생명을 보살펴 준 고개라 하여 개좌 고개라고 불렀다고 한다.
또 마을에는 장전리 할배 제당이 있다. 건립 연대는 1949년 음력 1월 11일이다. 제당에는 담장이 없고, 제당의 앞에는 개울이 있으며, 뒤에는 바위가 있다. 주위에는 잔솔, 도토리나무 등 잡목이 우거져 있다. 1년에 1회, 음력 정월 14일 밤 자정에 제를 지낸다. 마을의 주업은 논농사인 벼농사이다. 1971년~1973년 대곡 마을과 인근 임야 41정보에 밤나무 식재 단지를 조성하였으나, 판로 개척이 되지 않아 본래 계획대로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지금은 부산광역시민 밤 줍기 체험장으로 이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