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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고등보통학교 조선어연구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7634
한자 東萊高等普通學校朝鮮語硏究會
영어의미역 Joseon's Language Institute in Dongrae High School
이칭/별칭 동래고보 조선어연구회
분야 문화·교육/교육,구비 전승·언어·문학/언어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충렬대로285번길 22[칠산동 360]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강대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한글 연구 단체
설립자 허웅|박재우|장지완 외
설립 시기/일시 1937년연표보기 - 설립
최초 설립지 동래고등보통학교 조선어연구회 - 부산광역시 동래구 칠산동 360지도보기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동래 지역에 있었던 동래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조직한 한글 연구 단체.

[개설]

3·1 운동 이후 조선에는 각종 문화 단체들이 창립되었다. 일본어 교육에 반발하여 한글을 지키고 한글 교육을 통하여 조선인들을 계몽시키기 위한 단체들도 생겨났다. 그 중 조선어연구회는 1921년 장지영(張志暎) 등이 중심이 되어 서울 휘문의숙에서 처음 설립되었다. 한글 계몽 순회강연을 열고 학회지를 발간하는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펼쳤으며 일본의 일본어 교육에 맞서 한글 교육을 통해서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일조하였다. 이와 같은 취지로 1937년 동래고등보통학교에도 조선어연구회가 창립되었다.

[설립 목적]

동래고등보통학교 조선어연구회는 민족의 앞날을 위하여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하여 동래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설립하였다. 이들은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고 일본어 교육을 받는 후배들에게 한글 교육을 통해 항일 의식을 계승하고자 조선어연구회를 설립하였다.

[변천]

1937년 허웅(許雄), 박재우, 장지완, 박상락, 이인, 이동우, 정예영, 박길원, 윤정홍, 김진황, 이근택, 백불줄, 박수명, 정진화, 문회순, 이형우, 김재호와 신원 미상의 1명을 포함한 18명의 학생들이 조선어연구회를 처음 설립하였다. 이들 18명의 회원들은 최현배(崔鉉培)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글을 후배들에게 교육하였다. 그러나 1938년 3차 교육령으로 동래공립고등보통학교에서 동래공립중학교로 이름이 바뀌고 일제의 감시가 심해지면서 결국 연구회 활동이 중지되고 말았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이들은 동래고등보통학교의 교사였던 외솔 최현배 선생의 『중등 말본』을 입수하여 허웅이 강의를 맡아서 한글을 교육하기도 하였고 5학년생 9명이 하급생 한명씩을 맡아 가르치고 5학년이 졸업하고 나면 또 하급생을 선발하여 그 민족정신을 이어갔다. 해방 이후 부산에 한글문화회를 조직하고 한글 강습소를 설치하여 한글 교육의 전면에 나서기도 하였다.

1946년 10월 9일 부산부 계몽협회(釜山府啓蒙協會)에서 「훈민정음(訓民正音) 반포(頒布) 오백주년기념일(五百周年紀念日)」이라는 전단을 배부하였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늘 10월 9일은 이 강산 삼천리엔 큰 광명이 나타나고, 우리 민족 삼천만엔 거룩한 행복을 퍼부은 일대 국경일이다. 우리는 거족적으로 이날을 기념하자.

대지 만국에 문자가 많치마는 민중의 훈육을 위하는 동기에서 문자를 만드신 어른은 오즉 우리 세종대왕님 한 분이 계실 뿐이다.

약 이십만 마디의 우리 국어를 한글 스물넉자로 넉넉히 정확하게 지어낼 수 있는 세상에 둘도 없는 보배이다. 우리는 이글을 잘 배우고 잘 전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대지도자인 세종 대왕님의 성은을 갚자.”

[의의와 평가]

일본의 감시가 삼엄했던 1930년대 중반, 학생들 자발적으로 조선어를 연구하고 이를 통해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고 동시에 조선 민족의 우수성을 널리 알려 항일 의식을 고취하고자 했던 활동이었다. 동래고등보통학교 조선어연구회를 거쳐 간 인물들이 학생 운동에 그치지 않고 졸업 후 다양한 단체에서 한글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은 이 연구회가 부산 지역 항일 운동사에서 있어서 중요한 위치에 있음을 알려준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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