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9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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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萊幼稚園 |
영어의미역 | Dongrae Kindergarten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동래로152번가길 21-9[칠산동 246]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안경식 |
[정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칠산동에 있는 사립 유치원.
[설립 목적]
동래유치원은 동래부인회에서 지역 유아들의 교육을 위해 설립하였다. 동래부인회는 1922년 부산 동래 지역에서 설립된 여성 계몽 단체로, 서희숙, 염치일, 한동년 등이 발기하여 회원 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지식을 계발하며, 풍속을 개선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변천]
설립 연도에 대해서 자료[동래유치원 홈페이지, 팽영일 논문]마다 차이가 있다. 그러나 『동아 일보』 1927년 4월 6일자 기사에는 “경남 동래군은 보통 급(及) 중등 정도의 남녀 교육 기관은 타군에 비하여 비교적 완비되었다 할 수 있으나 아직까지 유년 교육 기관인 유치원이 한 곳도 완전한 곳이 없음을 유감으로 생각한 동래부인회에서는 거년부터 성의껏 노력한 결과 이천여 원의 동정금을 얻고 ○○○회에서도 부인 제씨의 노력에 감응되어 각 방면으로 조력하여 오던 바 북면 범어사에서는 금 일천 오백 원과 부지를 제공하여 동래 ○○동 불교포교당전에 ○○○○착수한다하며 당국의 허가 신청은 방금 수속 중에 있으며 우선 보모 1명을 초빙하여 제반 설비에 착수한다는데 원아 모집은 2개월 이내에 될터이라더라.”라는 내용이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부산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동래부인회가 주축이 되어 설립하였고, 범어사가 설립 자금과 부지를 제공하였음을 알 수 있다. 유치원사는 건평 99㎡[30평]으로 신축되었고 원아 80여 명을 수용하고 교사 3명도 초빙하였다.
이렇듯 동래부인회가 1927년 유치원 설립을 추진하는 과정에 동래 범어사는 처음부터 많은 지원을 하였으나 결국 부인회에서의 운영이 곤란해지자 같은 해 안에 범어사가 인계하였다. 그러나 1929년에 범어사의 재원인 미곡 수확이 반 이상 감소하여 유치원 지원이 곤란하게 되었다. 이에 동래유치원 자구책으로 가극회를 준비하여 동년 11월 22일 동래구락부에서 공연하였다.
개원 이래 경영난에 봉착하여 1968년 휴원했으나, 동래기영회에서 1970년대 이후에 동래유치원 운영에 직접 관여하였다. 동래기영회는 1846년 동래부에서 지역 유지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단체로, 장학 사업·문화 사업 등을 행하고 있다. 1979년 2월 23일 재개원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2012년 제81회 졸업식을 거행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설립 당시의 주요 활동 사항을 보면, 일제 강점기에는 원족회[소풍], 가극회, 운동회 등을 개최하였음을 신문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동래청년동맹 동래지부 웅변대회가 이곳에서 개최하려다가 경찰의 제지를 당한 기사에서 동래부인회와 이 청년 단체와의 긴밀한 협력 관계도 엿보인다. 동래청년동맹은 사회주의 청년 단체로 1928년 2월 26일 창립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유치원의 본연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원훈은 ‘밝고 맑게’이며, 교육목표는 ‘21세기를 선도할 창의적인 어린이’이다. 주로 재롱 잔치, 체험 학습, 연극 관람 등 문화 체험 등이 주요한 사업이다.
[현황]
동래유치원은 3학급[사랑반-3세반, 우정반-4세반, 지혜반-5세반], 종일반으로 운영하고 있고, 원아 수 69명, 교직원 5명[원장 1명, 교사 4명]이다. 교지 733㎡, 건물 409㎡로, 도서관, 수영장, 실외 놀이터를 갖추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일제 강점기의 민간 유치원으로 설립된 동래 지방의 대표적 유치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