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8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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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山本阪太郞 |
영어음역 | Sanbonpantaerang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전성현 |
[정의]
1937~1939년 부산 부윤을 역임한 일본인 관료.
[활동 사항]
산본판태랑(山本坂太郞)1897~?]은 일본 애원현(愛媛縣) 온천군(溫泉郡) 정강촌(正岡村)에서 태어났다. 1917년 애원현사범학교를 졸업하였고, 석정(石井)소학교 훈도로 교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919년 고등 시험에 응시하여 행정과에 합격하였고, 1920년 대장성(大藏省) 속(屬)으로 주계국(主計局)에서 관료 생활을 시작하였다. 1921년 총독부 속으로 임명되어 조선에 건너와 산림과와 임리조사회 서기를 겸하며 식민지 조선에서의 관료 생활을 시작하였다.
1922년 9월 도 이사관(道理事官)으로 임명되어 함경남도에서 근무하였으며, 1923년 학무 과장으로 승진하였다. 이어 1924년 5월에는 함경남도 학무 과장 겸 지방 과장[토목 과장]을 거쳐 황해도 학무 과장 겸 지방 과장을 역임하였다. 1926년에는 함경남도 재무 과장으로 옮겼으며, 1928년에는 평안남도 재무 부장을 거쳐 경상남도 재무 부장이 되었다. 1929년부터 1931년까지 다시 강원도 경찰 부장으로 옮겼으며, 재차 경상남도 재무부 사무관이 되었다.
1932년 2월에는 함경남도 경찰 부장, 그해 12월에는 황해도 내무 부장으로 옮겼다가 다시 대구 전매 국장으로 1936년까지 근무하였다. 1937년 부윤으로 승진하여 부산으로 왔으며, 1936년 준공된 새로운 부산부 청사에서 1937년부터 1939년까지 부산 부윤으로 활동하였다. 이때 남빈 매축 공사를 시작하여 1939년 완성하였다. 이후 충청북도 내무부 직속 사무관으로 활동하다가 퇴관하였다.
[상훈과 추모]
조선으로 건너와 1927년에 종7위로 서훈되었으며, 1940년 퇴관 즈음에는 관등이 3등 1급 칙임 대우로 정5위 훈4등으로 서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