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8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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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龜山理平太 |
영어음역 | Gameyama Riheita |
이칭/별칭 | 구산리평태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가연 |
[정의]
일제 강점기에 부산이사청 이사관을 지내며 식민 도시 부산의 초석을 놓은 인물.
[활동 사항]
가메야마 리헤이타[龜山理平太, 1870~1915]는 국권 강탈을 전후하여 이사관으로 재직하면서 부산에 머물러 살던 일본인들에게 여러 방면에서 식민 도시 부산의 주춧돌을 놓은 사람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1870년 일본 오카야마 현[岡山縣]에서 태어나 1898년 동경제국대학 법과를 졸업하여 내무속이 되었으며, 1900년 야마가타 현[山形縣] 경찰 부장, 1903년 나가사키 현 경찰 부장을 거쳐, 1905년 2월 한국공사관 경시가 되었다.
그 후 1906년부터 통감부 경시, 서기관, 내무부 내사 과장·법제 과장·지방 과장 등을 역임하였다. 1907년 9월 이사관으로 진급되어 부산이사청에 부임하였다. 1910년 9월 대만총독부 경시 총장으로 전임하면서 부산을 떠났고, 1915년 1월 도쿠시마 현[德島縣] 지사에 취임하였으나, 3월 5일 급성 장·위염으로 사망하였다.
가메야마 리헤이타가 이사관으로 있던 3년 남짓한 기간 동안, 부산 일본인 거류지의 많은 현안이 해결되었다. 예를 들어 거류지 외곽으로의 묘지 이전, 신시가 경영, 유곽 및 병영 이전, 병원·학교·부산이사청사 건축, 어항 착수, 시구 개정, 영선산 착평 공사 및 초량 해면 매축 공사, 신수도 공사, 기타 지방 재판소·우역 검사소의 설치 등이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