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8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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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靴鞋匠 |
영어음역 | Hwahye-jang |
영어의미역 | Shoe Making Technique |
이칭/별칭 | 화장,혜장,주피장,갖바치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사하구 암남공원로521번길 19[감천동 12-108]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이현주 |
[정의]
부산광역시에서 전승되고 있는 전통 가죽신을 만드는 전문 기술자.
[개설]
화혜(靴鞋)는 목 있는 신발인 화(靴)와 목이 없는 신발인 혜(鞋) 등을 통칭한 전통 가죽신을 의미한다. 화혜장(靴鞋匠)은 이 같은 전통 가죽신을 만드는 기술과 그 기술을 가진 장인을 이르는 말이다. 이를 ‘화장(靴匠)’, ‘혜장(鞋匠)’, ‘주피장(周皮匠)’, ‘갖바치’ 등이라고도 한다. 화혜장은 2010년 9월 20일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변천]
고려는 장인의 기술이 지극히 정교하여 그 뛰어난 재주를 가진 이는 다 관아(官衙)에 귀속되었다는 『고려도경(高麗圖經)』의 기록으로 미루어 고려 시대는 각 부문의 장인들이 국가의 체계적인 제작 활동을 펼쳐 나갔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시대에 간행된 『경국대전(經國大典)』을 보면, 중앙 관청에 화장은 16명, 혜장은 14명이 있었음을 알 수 있고, 『대전회통(大典會通)』 경공장(京工匠) 본조에도 화장과 혜장이 각각 6명이 배속되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조선 말기까지는 전통신의 제작이 활발하였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이후 신분제의 붕괴와 고무신과 서양 구두 등 공장 제작 신발의 보급으로 전통 가죽신의 명맥은 거의 단절되는 상태였다. 이에 문화재청에서는 화혜를 제작하는 전통적인 기술을 계승하기 위해 무형 문화재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안해표, 무형문화재 지정]
2010년 9월 20일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7호 화혜장 보유자로 인정받은 안해표(安海杓) 집안은 조선 말기 조부 때부터 대대로 전통신인 화혜를 만드는 것을 가업으로 삼아 왔다. 즉 조부 안두영(安斗英)은 1880년대에 사대부와 관리들의 신발인 흑혜를 제작하였다. 부친 안학봉(安學奉) 역시 가업을 이어받아 평생 전통신을 만들었고, 안해표는 12세(1962년) 때부터 전통 신발 제작 기능을 전수받기 시작한 이래로 1969년부터 가업을 이어받아 본격적으로 화혜 제작 기술을 계승하고 있다. 1920년대의 전통 화자본, 신본, 밑창본, 사구단지, 작두망치, 신골, 송곳과 바늘, 창뚤이판, 자 등의 도구를 그대로 물려받아 사용하거나 전통 방식을 고수하며 현재 흑혜(黑鞋), 당혜(唐鞋), 어름혜, 목혜(木鞋), 태사혜(太史鞋), 아혜(兒鞋), 제혜(祭鞋) 등 거의 모든 분야의 전통신을 제작하고 있다. 안해표는 오늘날 산업화된 사회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평생을 투철한 장인 정신으로 전통 기술의 계승에만 힘쓰고 있는 인물이라 할 것이다.
[화혜장의 기술 사업화]
2011년 행정안전부의 '향토 핵심 자원 사업화 시범 사업' 공모에 사하구의 ‘화혜장 전통 기술 프로젝트’가 선정되었다. 이에 전통 신발 제작 기술을 활용해 향토 명품 신발을 개발하는 프로젝트가 부산에서 추진 중이며, 사하구는 화혜장 전통 기술 사업화를 위한 생산 설비와 전수 공간 기반 시설을 구축하고 있다. 또한 보유자인 안해표의 전통 가죽신 제작 기술에 마케팅 전문가 등을 매치한 상품화 전략으로 지역 향토 명품 사업화를 추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