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6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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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周翰 |
영어음역 | Choe Juha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동철 |
[정의]
조선 후기 동래부 무임으로 활동하면서 초량 왜관의 개시 무역을 담당한 상인.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내유(乃維). 개국원종공신 최유경(崔有慶)[1343~1413]의 13세손이다. 아들은 최명호(崔命昊), 손자는 최정순(崔定洵)[1851년생]이다. 최정순은 『조선 신사 대동보(朝鮮神士大同譜)』에 의하면 부산부 읍내면 옥정동 9통 8호에 거주하였으며 범어동 동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된 동래부의 상인 명단을 보면, 최정순은 『상고 전인안』[1874. 12]에 전인[1875. 1]으로 추가되어 『전인안』[1875. 5]에 수록되어 있다.
[활동 사항]
최주한(崔周翰)은 1796년(정조 20) 2월 24일 태어났다. 동래부 장관청(將官廳) 중군(中軍)·천총(千摠)·파총(把摠), 별군관청(別軍官廳) 행수·별장(別將), 별기위청(別騎衛廳) 별장, 작대청(作隊廳) 별장·백총(百摠), 수첩청(守堞廳) 별장, 교련청(敎鍊廳) 초관(哨官)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동래부 최고 무임직인 중군을 역임한 대표적인 무임이었다.
『일대 관매 일기』 등 쓰시마 섬[對馬島] 종가 문서를 보면, 최주한은 1822~1823년, 1830년, 1837년, 1844~1846년에 ‘최행수’란 이름으로 도중 상고(都中商賈), 즉 동래 상인으로 활동하였다. 주로 소가죽[우피] 및 황금(黃芩)의 수출과 구리의 수입이 주된 무역 활동이었다. 1846년(헌종 12) 동래기영회에 입회하였다. 손자 최정순은 1908년 동래기영회에 입회하였다. 아들 최명호가 동래 상인으로 활동한 여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으나, 손자 최정순이 『동래부 상고안(東萊府商賈案)』에 올라 있어 동래 상인의 활동이 손자 대까지 이어지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