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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촌리 유적 원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335
한자 古村里遺蹟苑池
영어의미역 Remains of a Pond in Gochon-ri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고촌리 155-2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홍보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연못
길이 55.33m|55.8m
면적 251㎡|200㎡
원소재지 고촌리 유적 원지 원소재지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군 고촌리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 고촌리 유적에서 발견된 삼국·통일 신라 시대 인공 연못.

[개설]

원지(苑池)는 흙이나 돌로 축대를 쌓고, 그 안에 물을 가두어 두는 연못의 일종이다. 중국의 전국 시기에 도가 사상이 유행하면서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보고 장생을 구하는 것이 주요한 관심사가 되어 제왕은 궁 안에 못을 파고, 동해의 신선이 산다는 영주(瀛州)·봉래(蓬萊)·방장(方丈)의 세 섬을 만들고 불로장생을 구하였고, 이러한 연못 조성의 조경 양식이 이후의 시대에까지 이어졌다.

중국 역대 왕조의 왕궁 제도는 동아시아의 왕조에도 영향을 미쳐 각국의 왕들은 왕궁에 인공 연못을 만들고 유희를 즐겼다. 고구려의 안학궁 터, 백제 부여의 왕궁지, 통일 신라의 안압지 등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원지이다. 통일 신라 시대에는 왕궁뿐만 아니라 지방의 세력가들도 정원을 꾸미고 그 안에 연못을 만들었는데, 왕궁의 규모에는 미치지 못하고 단순한 구조와 형태였다.

삼국·통일 신라 시대의 부산 지역에는 인공 연못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지만, 철마 고촌리 유적에서 인공 연못이 확인되었다. 연못은 넓지 않은 자연 수로가 흐르는 곳에 돌로 둑을 쌓아 두 차례에 걸쳐 만들었다. 1차 연못은 평면 형태가 동서로 긴 오각형에 가깝고 동쪽으로 갈수록 넓어진다. 원지는 통일 직전의 삼국 시대에 처음 만들었고, 통일 이후에 한 번의 개축을 통해 2차에 걸쳐 사용되었다. 규모는 동서 25.84m, 남북 9.7m, 총 연장 55.33m이고 평면적은 251㎡이다.

내부 시설은 북·서·남안을 둘러싸고 있는 호안 석축이 있고, 바닥은 원지의 기반층인 니토층을 그대로 이용하였으며, 입수구와 출수구는 확인되지 않았다. 호안 석축은 20~60㎝ 크기의 냇돌과 깬돌을 섞어 흐튼 층 쌓기[지면에 닿는 하부에는 굵은 돌을 놓고 상부로 갈수록 작은 돌을 자연스럽게 쌓은 형상]를 하였고, 북안과 서안은 직선적으로 쌓았고, 남안은 곡선적으로 쌓았다.

2차 원지는 평면 형태가 긴 장주형에 가깝고, 규모는 동서 32.3m, 남북 6.2m, 총 연장 55.8m이고, 평면적은 200㎡이다. 1차 원지의 북안은 그대로 사용하고, 남북 폭은 축소되었으며 동서 폭은 확장되었다. 입수구와 출수구는 확인되지 않았다.

원지 내부에서 굽다리 접시·뚜껑·완(碗)·인화문 토기 시루·기와 등과 식물 유체가 출토되었다. 출토된 유물로 볼 때, 원지는 통일 신라 전기인 7세기 후반에서 8세기에 사용되었다. 철마 고촌리 유적에서 조사된 원지는 부산 지역에서 처음 확인된 것으로 통일 신라 시대 지방에 만들어진 원지의 형태와 구조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중앙의 원지와 지방의 원지를 상호 비교할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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