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3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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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熊川里書堂 |
영어공식명칭 | Oongchunli Seodang |
분야 | 종교/유교,문화·교육/교육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최두진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에 있었던 서당.
[설립 목적]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 중리 마을 한의생(漢醫生) 김채홍(金埰洪)[1870~1928]의 집에서 일반 학문 및 한의학을 가르치기 위해 웅천리 서당[중리 서당]을 설립하였다. 이 때 천주교 수영공소 초대 회장을 역임한 한의생 김태일(金泰一)[세례명 베드로, 1881~1958]이 서당 훈장을 맡았다.
[변천]
김태일은 1910년까지 한약업에 종사하면서 한의학과 일반 학문을 가르쳤다. 당시 서당 훈장으로는 철마면 3·1 운동을 주동한 중리 마을 출신 정인준, 문진호, 문용호 등이 있었다. 이들은 후에 웅천리 서당에서 미동 서당을 분리하여 운영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매약상(賣藥商)을 통한 수입으로 서당을 운영하였다. 당시에는 조선총독부령에 의해 한의사 매약 시험에 합격하면 매년 면허를 얻어 매약상을 할 수 있었다. 서당에서 가르치는 기본 교육 내용인 『천자문(千字文)』·『동몽선습(童蒙先習)』·『소학(小學)』·사서삼경(四書三經)·『통감(通鑑)』 등의 강독, 절구(絶句)·사율(四律)·고풍(古風) 등의 작문, 그리고 해서(楷書) 위주의 습자를 교육하였다. 더불어 『동의보감(東醫寶鑑)』이나 『황제내경(皇帝內經)』 등의 한의학 관련 서적도 교육 내용에 포함되었을 것이다.
[의의와 평가]
웅천리 서당의 설립자인 김채홍은 일제 강점기에 한약을 매매한 수입으로 교육에 힘을 쏟았고, 또한 독립운동에 기여를 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세워진 서당이지만 근대 교육의 교과를 도입한 개량 서당이 아닌 기존의 학문을 고수하여 한문을 주로 가르치는 재래 서당의 성격을 갖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