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3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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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雲峰大宗師行化碑 |
영어의미역 | Stone Monument for Great Master Unbong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임랑리 산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미숙 |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임랑리 묘관음사에 있는 운봉 성수의 행화비.
[위치]
운봉 대종사 행화비(雲峰大宗師行化碑)는 경상북도 선산 도리사에 있었는데, 문도들의 뜻에 따라 2000년 묘관음사로 옮겼다. 묘관음사 입구 금강문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운봉 대종사 행화비와 부도가 있다. 그 옆에는 향곡 대종사 행화비(香谷大宗師行化碑)와 부도가 있다.
[형태]
비신은 높이 81㎝, 너비 66㎝, 두께 33㎝이다. 귀부는 가로 103㎝, 세로 146㎝, 높이 79㎝이다.
[금석문]
금석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운봉은 1889년 12월 7일 경상북도 안동 후남동 정씨 가문에서 출생하였다. 13세 때 일하 화상(一荷和尙)을 은사로 출가하였고, 15세 되던 해 삭발하고 사미계를 받았다. 이때 법명이 성수(性粹)이다. 사미계를 받고 본격적으로 불문에 든 운봉은 강백(講伯) 회응(晦應)의 문하에서 교법을 배우고, 23세 되던 해 범어사 만하 화상(萬下和尙)으로부터 구족계를 받았다. 25세에 상주 원적사의 석교 율사(石橋律師)로부터 계율을 배웠다. 금강산·오대산·묘향산 등의 거찰에서 정진하였다. 35세에 백양사 운문암에서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 이때 한 편의 게송을 읊었다.
문 밖에 나왔다가 갑작스레 차가운 기운이 뼈 속에 사무치자/ 가슴속에 오랫동안 걸렸던 물건 활연히 사라져 자취가 없네. 서릿발 날리는 달 밝은 밤에 나그네들 헤어져 떠나간 다음/ 오색단청 누각에 홀로 있으니 산과 물이 다 공하도다.
운봉은 부산 선암사의 승려 혜월을 찾아가 인가(認可)를 받았다. 이로써 임제종[조계종]의 법등(法燈)이 운봉에게 계승된 것이다. 이후 운봉은 통도사·범어사 등에서 조실을 맡아 후학을 가르쳤다. 계미년[1943] 월내포 묘관음사로 옮겼다. 병색이 깊어지자 제자 향곡에게 자신이 입적할 날을 미리 알리고 후사를 부촉(咐囑)하였다. 2월 그믐날 입적게(入寂偈)를 남기고 돌아가셨다. 운봉의 나이 58세, 법랍 45세였다.”
석가 달마삼천(釋迦達磨退三千) 후학 성철(性徹) 삼가 쓰다.
법자질(法資秩) 회암 조심(晦岩祖心), 향곡 혜림(香谷蕙林), 구옹 지우(瞿翁智宇), 구암 고현(龜岩古玄), 우하 도원(雨下道源), 진해 각현(震海覺玄), 낙산 병율(落山炳律)
[현황]
묘관음사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운봉 대종사 행화비는 묘관음사를 창건하고 선승으로 활약한 운봉의 생애와 조계종의 사자(師子) 전승 관계를 설명해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