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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286
한자 甕器
영어의미역 Pottery
이칭/별칭 옹기그릇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홍보식

[정의]

부산 지역에서 출토된 옹기.

[개설]

옹기(甕器)는 진흙만으로 구워 표면에 피막이 입혀지지 않아 테석테석한 질그릇과 질그릇에 오짓물을 입혀 구운 오지그릇의 총칭으로, 주로 조선 시대에 저장 용기로 사용되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경공장(京工匠)으로 옹장의 기록이 있어 정책적으로 옹기장을 두고 옹기를 생산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시대 옹기는 지역마다 형태에 차이가 있는데, 그 차이는 음식을 안전하게 오랜 기간 저장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옹기는 해방 이전까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가정에서 생활 용기로 사용하였고, 플라스틱과 금속으로 만든 생활 용기가 많이 쓰이면서 현저하게 쇠퇴하였다.

[부산 지역 출토 옹기의 특징]

부산에서 옹기는 만덕사지[부산광역시 기념물 제3호]와 범어사 보제루 터 등 사찰과 기장군 상장안과 하장안의 분청사기 가마 유적 등지에서 출토되었다. 부산 지역에서 출토된 옹기의 제작 특징은 다음과 같다. 몸통 직경이 30~40㎝ 이상인 대형 옹기, 예를 들면 시루·큰 항아리[大壺]·큰 독[大甕]·손잡이 달린 큰 독[把手附甕] 등의 성형 기법이다.

몸통 직경이 큰 토기는 바닥을 만든 다음 점토 띠를 나선형으로 2~3회 쌓은 후, 아래위의 점토 띠의 접합력을 높이기 위해 손가락 끝으로 누른 후 회전력을 이용하여 형태와 기벽 두께를 조정하고, 표면을 목판으로 두드려서 단단하게 하는 행위를 수회 반복하여 몸통을 완성한다. 타날과 나선형 점토 띠 쌓기 사이에는 짧은 시간 공백이 있는데, 이 공백은 먼저 성형한 부분이 어느 정도 단단해지는 시간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기벽이 적당하게 건조되지 않으면 태토 내의 수분 때문에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다.

나선형으로 점토 띠를 쌓은 후 회전 물 손질한 성형 방식은 내면이 말끔하게 정면이 되지 않아 점토 띠 접합 흔적이 남아 있거나 기벽의 단면 두께가 얇은 부위와 두터운 부위의 간격이 일정하게 유지되었을 경우 확인 가능하다.

목의 직경을 다소 크게[대략 완성하였을 때 목 직경의 1.3~1.5배 크기로 추정] 한 후, 목의 위쪽을 잡고 시계 반대 방향 또는 시계 방향으로 비틀어서 직경을 줄여 완성한다. 이 방법으로 좁은 목을 만들 경우, 표면은 회전 물 손질로 정면이 되었으나 이면은 힘을 받은 면이 희미하게 튀어나오면서 표면에 주름이 만들어진 모습이 관찰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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