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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작곡 서당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275
한자 玉作谷書堂
영어음역 Okjakgok Seodang
분야 종교/유교,문화·교육/교육,역사/전통 시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달산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최두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교육 기관|학교
설립자 송일곤(宋一坤)
설립 시기/일시 1735년연표보기 - 설립
최초 설립지 옥작곡 서당 -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달산리 옥작곡

[정의]

조선 후기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달산리에 있었던 서당.

[설립 목적]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달산리에는 옛날에는 옥작곡이라 하였고 지금은 부흥곡(復興谷)이라는 곳에 유명한 서당이 있었다. 이 고을에 살고 있는 송씨 가문에서 전래되는 얘기는 1735년(영조 11)에 정관 달산리에 송일곤(宋一坤)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가난하여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면서도 글공부를 좋아하였다. 일을 하다가도 책장수가 지나가면 그 책을 사서 머슴방 시렁에 달아두고 좀이 붙지 못하도록 하루 한 번씩 그 줄을 흔들었다고 한다. 송일곤은 송관수(宋觀洙), 송진수(宋晋洙) 두 아들을 두게 되자 옥작곡[골]에 서당을 세우고, 권 처사와 최 진사 두 사람을 선생으로 모시고 글공부를 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항시 두 아들에게 훈시하기를 “‘사람은 삼체에 망하니, 삼체를 조심하라’ 하였는데 삼체란 없으면서 있는 체, 모르면서 아는 체, 못난 것이 잘난 체” 하는 것이라 하였다. 또 서당에서 공부하는 두 아들에게 밥을 가져다주면서 글을 쓸 종이가 없으면 심지어 자기 갓[冠]을 잡히고 종이를 사 주었다고 한다.

[변천]

옥작곡 서당은 한문만을 가르치는 재래 서당의 성격을 계속 유지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일반 자제를 위한 교육으로서 『천자문(千字文)』, 『동몽선습(童蒙先習)』, 『소학(小學)』, 사서삼경(四書三經) 등의 교재를 중심으로 강독을 행하고, 절구와 사율(四律) 등의 시를 짓고, 해서→행서→초서의 순서로 글쓰기를 가르쳤다.

[의의와 평가]

논과 밭이 많은 곳에서는 여유 자금이 있어 서당 운영이 용이하지만, 옥작곡과 같은 곳에서는 물산이 풍부하지 않아 운영 자금이 부족했다. 하지만 그러한 가운데서도 교육을 위해 외부의 훈장을 모셔와 자제들을 공부시킨 열의는 조선 시대 사회의 교육열을 대변해 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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