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2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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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蓮山洞古墳群出土朝鮮時代- |
영어의미역 | Joseon Dynasty Scissors Excavated from the Tomb Site No. 4 in Yeonsan-do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동 산90-4|산123-1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은영 |
[정의]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동 고분군에서 발견된 조선 전기 분묘에 껴묻은 철제 가위.
[개설]
고대의 가위는 현대와 같이 형태가 크게 분화되지 않아, 의복을 만드는 도구이었을 뿐 아니라 종이를 자르고 머리카락이나 손발톱을 다듬는 데 필수적인 도구로 이용되었다. 가위는 극소수의 삼국 시대 고분이나 건물 터, 목탑의 심초석(心礎石) 아래에 매납되거나 사리 장엄구에 포함되기도 하였으나 무덤에 부장하는 풍습은 주로 고려 시대부터 조선 전기에 걸친 시기로 추정된다. 연산동 고분군 출토 조선 시대 가위는 2008년 12월 28일부터 2010년 12월 2일까지 부산광역시립박물관에서 발굴하여 소장하고 있다.
[형태]
연산동 고분군에서는 35호분, 43호분, 73호분 조선 시대 분묘에서 철제 가위가 각 1점씩 출토되었다. 35호분의 경우 피장자의 하반신 쪽에서 청동 반지 2점, 구슬 39점, 청동 거울 1점과 같이 부장되어 있었다. 43호분과 73호분의 경우는 피장자의 발치 쪽에서 출토되었다. 43호분은 철제 가위 주변에 청동 뚜껑과 청동 합, 청동 숟가락이 같이 놓여 있었으나, 73호분에서는 철제 가위만 놓여 있었다.
가위 길이는 35호분이 11.5㎝, 43호분이 잔존 길이 13㎝, 73호분이 15.9㎝ 정도로 대체로 소형에 속한다. 형태는 모두 2개의 날을 X자형으로 교차하고 중간에 고정 못을 박은 것이다. 이 같은 X자형 가위는 13세기 후반에 제작되기 시작하는데, 이 시기부터 고려를 지배하게 된 원의 영향으로 가위 형태에 변화가 나타난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연산동 고분군의 조선 시대 분묘에는 인골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가위가 여성에게 부장된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고려 시대의 장례 풍습을 전승하고 있는 조선 전기의 부장품으로서 가위가 규중칠우(閨中七友) 가운데 하나라 하여 피장자가 여성일 것으로만 판단하기보다는, 오히려 가위는 자르는 기능을 수행하는 물건으로서의 상징성에 기반을 두어 악한 기운이라든지 이승과 저승을 나누는 의미로 채택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견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