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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마 해역 6·25 전쟁기 민간인 학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147
한자 -海域六二五戰爭期民間人虐殺
영어의미역 Site of Civilian Massacre in the Korean War in Tsushima Waters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기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건
관련인물/단체 국민보도연맹원|부산 형무소 재소자
발단 시기/일시 1950년 6월 25일 - 6·25 전쟁 발발
발생|시작 장소 쓰시마 섬 - 일본 나가사키현 쓰시마 섬 이즈하라
종결 장소 쓰시마 섬 - 일본 나가사키현 쓰시마 섬 이즈하라

[정의]

6·25 전쟁 초 부산에서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살해된 민간인 시신들이 일본 쓰시마 해역까지 떠내려간 사건.

[역사적 배경]

6·25 전쟁 기간 동안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민간인 학살이 수없이 저질러졌는데, 인민군 미점령 지역이던 부산에서는 전쟁 초기 예비 검속된 국민보도연맹원과 부산 형무소 재소자들이 집단 학살로 목숨을 잃었다. 특히 부산과 같이 바다를 접한 지역에서는 시신이 바다에 버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처리가 간단하고 증거를 감추기가 쉽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경과]

피해자를 일일이 총살 등의 방법으로 살해하는 경우도 있었고, 여러 명을 한데 묶어 바다에 던져 살해하기도 하였다. 다른 곳에서 살해한 시신을 바다에 수장하기도 하였는데, 이때는 징발된 어선이 주로 사용되었다. 이렇게 살해된 시신 중 일부가 대한 해협 물살에 휩쓸려 쓰시마까지 표류하였다. 한데 묶인 시신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쓰시마 섬에서 발행되는 신문인 『대마 신문』 아카시 마사모[2001년 증언 당시 80세] 사장은 1950년 9~10월께 이즈하라 항구에서 시신 5구가 새끼줄에 손발이 서로 묶인 채 어선 갑판에 놓여 있는 것을 목격하였다고 증언하였다. 일본 어부들이 시신을 인양해 경찰에 신고하였고 부검을 통해 한국인임이 확인되었다.

[결과]

일본인들은 인양한 시신을 그대로 매장하거나 화장한 뒤 사찰에 안치하였다. 쓰시마 섬 이즈하라 시내에 있는 사찰인 다이헤이사[太平寺]에는 화장한 유골을 안치한 납골당과 비석이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대한 해협은 물살이 거세기로 유명하다. 이런 조건에서 시신이 쓰시마 섬까지 흘러갔다는 사실은 학살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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