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58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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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釜山大學校在日交胞間諜團事件 |
영어의미역 | Incident of Korean resident spies in Japan at Busan National University |
이칭/별칭 | 김오자사건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산대학로63번길 2[장전동 산30]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승안 |
[정의]
1975년 부산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재일 교포 관련 간첩단 조작 사건.
[역사적 배경]
1970년대 중반 박정희(朴正熙) 정권은 재일 교포 사회에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의 세력이 확산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다수의 재일 교포 대학생을 한국으로 불러들여 유학을 시키며 체제 우위를 선전하려 시도하였다.
[경과]
1975년 부산대학교 법정대학의 데모를 주도한 정치외교학과 노승일은 시위 과정에서 재일 교포 유학생 김오자를 만났다. 당시 김오자는 문리대 사학과에 재학 중이었는데, 노승일은 일본의 시사 잡지 『세계』에 연재된 ‘한국으로부터의 통신’[후일 필자 K는 지명관으로 알려졌다]을 전달받았다. 당시 한국 사회는 언론 통제가 극심하여, 한국에 관한 정보를 일본으로부터 입수하는 기현상을 낳았던 것이었다.
그런데 1975년 10월 10일에 김오자가 반(反)정부 성격의 전단을 살포하면서, 이를 추적한 경찰이 김오자와 관계된 인물들이 대거 체포되었다. 이들은 10월 18일 중앙정보부 대연동분실로 연행되어 수영 비행장에서 서울로 압송되었고, 중앙정보부 5국의 주도 아래 조사가 실시되었다.
이 사건으로 부산대학교 학생 박준건, 김오자, 김정미, 김준홍, 노승일, 박명근, 이원이 등과 부산대학교 철학과 교수 하일민과 대학원생 김명수 등이 구속되었다. 이 사건은 11월 22일 ‘재일 교포 간첩단 사건’으로 명명되어 언론에 발표되었다. 여기에는 총 24명이 연루되었는데 이들은 김오자와 단순한 지인 관계에 있거나, 이원이와 같이 전혀 다른 별개의 사건 관련자임에도 같이 묶여 들어가기도 하였다. 이로써 단순한 반정부 유인물 살포 사건을 의도적으로 확대하여 간첩 사건으로 조작했던 것이다.
[결과]
일명 김오자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으로 김오자는 무기 징역, 이원이[경제학과 4학년] 징역 5년, 김정미[철학과 3학년] 징역 3년 6월, 김준홍[정외과 3학년]과 노승일[정치외교학과 3학년] 및 박준건[철학과 3학년]은 각각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의의와 평가]
부산대학교 재일 교포 간첩단 사건은 그 전해인 1974년의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약칭 민청학련]사건이 발생하고 반(反)유신 시위가 비등할 때 이루어진 조작된 간첩단 사건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같은 날짜에 ‘서울의대 재일 교포 간첩단 사건’과 함께 언론에 발표됨으로써 세간의 주목을 받았고, 공안 정국을 조성하려는 수사 당국의 의도가 명백하게 드러났다. 한편으로 이 사건은 일본에서 유학 온 재일 교포 2세의 자유로운 사상적 특징을 감안하지 않고 간첩으로 몰아세운 것으로, 유신 체제가 다수의 재일 교포들을 분열시키고 고국에 대한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작용한 비극적인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