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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778
영어의미역 Iron Chisel Excavated from the Ancient Tomb Sites in Bokcheon-dong in Busan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고대/초기 국가 시대/삼한,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안해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철제 공구
재질
출토|발견지 노포동 고분군 - 부산광역시 금정구 노포동 142-1지도보기
출토|발견지 부산 복천동 고분군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50지도보기
출토|발견지 연산동 고분군 -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동지도보기
출토|발견지 부산 오륜대 고분 - 부산광역시 금정구 선동 175지도보기

[정의]

부산 지역에서 출토되는 삼한~삼국 시대의 철제 공구.

[개설]

고대 쇠끌은 목제나 석제, 피혁 등의 대상물에 구멍을 뚫거나 조형물을 제작하기 위한 도구로서 망치로 때리거나 손으로 후벼 파서 사용한다. 한반도 중서부 지역과 영남 지역에서 주로 출토되며, 부산 지역에서는 온천동(溫泉洞) 4호 널무덤과 노포동 고분군(老圃洞古墳群) 나 지구 널무덤[목관 묘]에서에서 출토되었다.

[형태]

쇠끌은 날 부분인 인부(刃部)와 몸통인 신부(身部)로 구성된다. 쇠끌의 끝 부분은 목제 자루를 착장하기 위한 투겁[銎部]이 형성된 경우와 없는 경우가 있다. 초기의 쇠끌은 투겁이 형성되어 나무 자루를 끼워 사용하도록 제작된다. 또한, 길이가 짧은 편이며, 투겁의 단면 형태는 방형(方形)이다. 이후 쇠끌이 확산되면서 점차 길이가 길어지고, 투겁의 단면 형태가 원형(圓形)으로 변화한다. 삼국 시대의 쇠끌은 투겁이 형성되지 않고 몸체의 길이가 월등히 길어진다.

[특징]

노포동 고분군 나 지구 1호 널무덤과 온천동 4호 널무덤에서 출토된 쇠끌은 비교적 길이가 길고 투겁의 단면 형태는 원형으로, 확산기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이후 삼국 시대가 되면 쇠끌의 출토량이 증가하며, 형태도 변화한다. 쇠끌의 몸체는 월등히 길어지고 투겁이 사라지며, 단면 형태는 방형(方形)을 띤다. 쇠끌의 기부(基部)에는 망치로 수차례 두드린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조형물을 제작하기 위한 도구로 보인다. 부산 지역에서는 복천동 고분군(釜山福泉洞古墳群), 연산동 고분군(蓮山洞古墳群), 오륜대 고분군(釜山五倫臺古墳), 기장 가동 고분군(機張佳洞古墳群) 등지에서 쇠끌이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초기 철기 시대부터 등장한 쇠끌은 이후 삼국 시대까지 확인되는데, 쇠끌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청동으로 제작된 끌[銅鑿]을 사용하였다. 청동끌은 아산 남성리(南城里), 대전 탄방동(炭坊洞) 등 중서부 지역과 함평 초포리(草浦里), 전주 여의동(如意洞) 등 호서·호남 지역까지 주로 분포한다.

쇠로 제작된 끌[鐵鑿]은 부여 합송리(合松里), 장수 남양리(南陽里), 당진 소소리(素素里) 등 중서부 지역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한반도의 대표적인 초기 철기 시대 유적인 이곳에서 쇠끌은 한국식 동검 문화 단계의 다양한 청동 제품과 더불어 등장하는데, 청동끌에서 쇠끌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후 쇠끌은 영남 지역으로 파생되어 대구 월성동(月城洞), 성주 예산리(禮山里), 대구 팔달동(八達洞), 경주 조양동(朝陽洞), 창원 다호리(茶戶里), 부산 노포동, 부산 온천동 등지에서도 출토된다. 이러한 쇠끌의 확산은 한반도 남부 지역 철기 문화의 전파 과정을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유물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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