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56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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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點道 |
영어음역 | Bak Jeomdo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전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종세 |
[정의]
1960년 4·19 혁명 당시 경찰의 총탄에 맞아 사망한 부산 성남초등학교 학생.
[활동 사항]
박점도(朴點道)는 1950년에 태어나 1957년 부산의 성남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성남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 박점도는 4·19 혁명을 맞았다. 부산에서도 이승만(李承晩) 정권의 전횡과 무능에 대한 저항은 학생 시위로 시작되었다. 3월 초부터 ‘공명선거’와 ‘학원의 자유’를 주장하는 벽보와 유인물 살포로 시작된 학생들의 움직임은 3월 12일 해동고등학교 학생들의 가두시위를 필두로, 24일 부산고등학교, 25일 동성고등학교 학생들의 시위에 이어 14일과 26일까지 여러 차례 고등학교 학생들의 연합 시위가 일어났고, 4월 18일에는 동래고등학교 학생들의 시위로 이어졌다. 그리고 4월 19일에 가두시위는 정점에 이르렀다.
4·19 혁명 기간 부산 지역에서 최대의 시위 군중이 모인 19일의 시위 중심지는 서면 로터리 인근에 있는 부산진경찰서와 경남공업고등학교 일대였다. 오전부터 시작된 시위는 밤늦게까지 계속되었고, 시민들이 참여하면서 시위는 더욱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이날 경찰은 무차별적으로 총기를 난사하여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폭력 진압을 일삼던 부산진경찰서가 성난 군중에 의해 파괴, 방화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과정에서 박점도는 부산진경찰서 앞에서 약 200m 떨어진 서면 로터리 건너편에서 경찰이 쏜 총알의 유탄에 맞았다. 경찰이 쏜 총알이 돌연 날아와 박점도의 복부를 관통하여 다시 허벅지를 통과했던 것이다. 이것이 직접적인 사인이 되어 며칠 이내 박점도는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