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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촌리 유적 출토 삼태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550
한자 古村里遺蹟出土-
영어의미역 A Basket for Carrying Rubbish Excavated from the Gochon-ri Remains
이칭/별칭 삼태미,꺼랭이,발 소쿠리,짚 소쿠리,분
분야 역사/전통 시대,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물품·도구/물품·도구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고촌리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황경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물
재질 사리|대오리|칡덩굴|짚|갈대
크기 576㎝[길이]|204㎝[너비]|18㎝[깊이]
관리자 부산광역시립박물관
출토|발굴 시기/일시 2010년연표보기 - 발굴
현 소장처 부산광역시립박물관 -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4동 948-1지도보기
출토|발견지 고촌리 유적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고촌리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고촌리에서 발견된 삼국 시대 삼태기.

[개설]

삼태기는 재·두엄·쓰레기·흙·곡식 등을 퍼 담아서 나르거나 허리에 끼고 밭에 씨앗을 뿌리는데 사용한 용구로서 일상생활에서 다양하게 사용된다. 삼태미·꺼랭이·발 소쿠리·짚 소쿠리·분(畚)이라고도 부른다. 가는 사리나 대오리·칡덩굴·새끼·짚·갈대 등 여러 가지 재료를 사용해 짜서 만든다. 사리·칡덩굴·대오리·새끼 등은 가로세로로 서로 얽히게 평직으로 짜고, 짚이나 갈대 등은 길이 방향으로 놓고 사이에 새끼로 엮어서 만든다.

삼태기를 언제부터 만들어서 사용하였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한반도에 농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청동기 시대부터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실물 자료가 확인되지 않았다. 벼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철기 시대에 들어오면서 삼태기로 추정되는 것이 저습지나 하천 등지의 유적에서 발견된다.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고촌리 유적의 삼국 시대 저습지에 조성된 18호 소성 유구에서 곡물이 담긴 채 삼태기로 추정되는 용구가 확인되었다.

[형태]

고촌리 유적 소성 유구는 길이 576㎝, 너비 204㎝, 깊이 18㎝ 크기의 부정형이며, 내부에 불에 탄 흙과 재가 채워져 있었고, 바닥에 불에 탄 콩과 조가 가득 들어 있었다. 불에 탄 곡물 아래에는 사리나무 같은 가느다란 나무가 가지런히 놓여 있고, 가지 방향과 엇갈리게 동일한 간격으로 끈으로 연결한 용구 흔적이 확인되었다. 이 용구는 콩과 조를 담은 삼태기일 가능성이 있다. 삼태기가 늦어도 삼국 시대 초인 4세기부터 곡물을 담아 두거나 나르는 데 빈번하게 사용되었음을 보여 주는 자료이다.

[의의와 평가]

고촌리 유적 소성 유구의 바닥에서 확인된 삼태기는 화재와 같은 사고로 일시적으로 내부에 담긴 콩과 조와 함께 매몰된 상태로 확인되었다. 특히 탄화 곡물과 함께 출토되어 당시 잡곡의 생산과 잉여 생산물 및 현재도 사용되고 있는 삼태기의 존재가 부산 지역에서 삼국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감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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