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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468
한자 東萊鼓舞
영어의미역 Entertainment Show in Dongnae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작품/무용과 민속극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우장춘로 195-46[온천동]
집필자 김국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3년 12월 28일연표보기 - 동래고무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0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동래고무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로 재지정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45년 무렵 - 동래 권번이 폐지되자 전승 단절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7년 1월 18일 - 발굴 시연회를 가짐
초연|시연장 부산 민속 예술관 - 부산광역시 동래구 우장춘로 195-46[온천동]지도보기
공연장 부산 민속 예술관 - 부산광역시 동래구 우장춘로 195-46[온천동]지도보기
성격 무용|민속 무용
형식구분 북춤
주요등장인물 기녀 8명[원무 4명, 협무 4명]
공연자/보유자 김온경
문화재 지정번호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정의]

부산광역시 동래구에서 전해 내려오는 북춤.

[개설]

동래고무는 고려 초기 궁중에서 기생들이 추었던 무고(舞鼓)[북춤]가 그 원류이다. 이 춤이 조선 시대 궁중으로 계승되었고, 다시 동래 관아의 교방으로 전해져 관기들에 의해 연례무(宴禮舞)로 행해지면서 지역의 명칭에 따라 동래고무(東萊鼓舞)라는 이름으로 전승되어 왔다. 1905년 관아의 교방청이 폐지되고, 1920년 동래에 기생들의 조합인 권번(券番)이 생기면서 소속 기생들을 중심으로 고무가 행해졌다. 1930년대에 들어와서는 기녀의 수가 늘고 장소에 대한 여건이 호전됨에 따라 처음에는 네 명의 기생이 추었던 것을 ‘지화자’를 가창하는 협무의 기녀들도 함께 하여 지금의 팔기무(八妓舞)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동래고무는 8·15 광복 직후까지 연행되었다고 하는데, 권번이 폐지된 후에는 중단되었다. 1986년에 김온경(金溫慶)[전 부산여자대학교 교수, 보유자]이 ‘발굴 보고서’를 내고, 당시 고무를 배웠던 김해월[1914년 생]과 석음전[1920년 생]으로부터 춤사위를 익혀 1987년 1월 18일 부산 민속 예술관[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 금강 공원 내]에서 발굴 시연회를 갖게 되었다. 1993년 12월 28일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되었으며,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현재도 부산을 대표하는 전통 문화로서 계승되고 있다.

[구성 및 형식]

동래고무의 반주 음악은 영산회상으로 세령산, 염불, 도드리, 지화자, 자진 타령, 타령 등의 군악 순으로 진행된다. 춤 또한 반주 음악에 맞추어 6장으로 나누어진다. 대표적인 춤사위는 머리사위, 뿌림사위, 맞춤사위, 옆실이, 북춤사위, 꽃나비사위, 연풍대 등이다. 반주 악기는 대금 1, 향피리 2, 해금 1, 북 1, 장고 1 등으로 이루어진다. 복식은 원삼, 한삼, 족두리, 댕기 등이며, 무용 도구는 직경 80㎝ 정도의 큰북 4개와 북을 세우는 북틀, 그리고 북채이다.

[내용]

동래고무는 중앙에 큰북을 놓고, 4명의 원무(元舞)가 영산회상곡에 맞추어 북을 치면, 4명의 협무(挾舞)가 지화자를 노래하면서 함께 어울려 춤을 추는 북춤이다.

먼저 무용수 한 사람이 북채를 들고 나와 북 앞에 한 쌍씩 시옷[ㅅ]자 형으로 네 곳에 나란히 놓고 나간다.

1장 ‘잔영산[세령산]’: 네 사람의 원무가 천천히 걸어 나와 북채가 놓인 곳에 각각 나란히 앉아 절하고 일어난다. 다음으로 서로 마주 보고 춤을 춘 후, 서로 등지고 춤을 춘다.

2장 ‘염불’: 북채를 집어 한삼 속에 넣고 북 주위를 천천히 돌아 북 사방에 서서 춤을 추며 나아가고 춤을 추며 물러난다.

3장 ‘도드리’: 북을 치는 시늉만 하고 실제로 북을 치지는 않는다. 한삼으로 북에다 걸기만 하는데, 좌우로 팔을 바꾸어 행하다가 다시 춤을 추며 나아갔다 물러났다 한다. 이때 협무가 등장한다. 협무는 지화자를 가창하면서 원무의 춤을 보강하는 역할을 한다.

4장 ‘지화자’: 원무가 협무와 함께 팔고무(八鼓舞)를 이루고 춤과 노래를 일치시킨다. 원무는 북을 치면서 북 주위를 돌고, 협무는 지화자를 가창하면서 원무 주위를 돌며 앉았다 섰다 하면서 춤춘다. 이 4장 부분이 동래고무의 가장 중심이 되며, 춤의 절정에 이르는 대목이다.

5장 ‘자진 타령’: 원무는 속도를 빨리하여 북을 치는데, 한 자리에 서서 앉았다 섰다 하면서 북을 친다. 협무는 원무의 주위를 돌면서 춤을 춘다.

6장 ‘타령’: 동래고무의 말미로 원무가 협무와 함께 춤을 춘다. 이 부분은 가장 화사하고 아리따운 무태로서 마치 나비가 꽃을 감도는 듯이 춤을 춘다.

[연행 시기 및 관련 의례]

동래고무는 관아의 연회나 의례가 있을 때 주로 연행되었다.

[현황]

현재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에서 보유자 김온경을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동래고무는 궁중정재(宮中呈才)도 아니고 순수 민속춤도 아닌 기생들의 교방무라는 점에서 독특한 가치가 있다. 춤에 품격과 아름다움이 있으며, 춤의 구성이 단조로우면서도 화려하다. 특히 예술적 기교가 중시된다.

[참고문헌]
  • 김온경 『동래 고무 총람』(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 1999)
  •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http://www.pusanminso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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