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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309
한자 金宗元
영어음역 Gim Jongwon
이칭/별칭 금산종원(金山宗元),백두산 호랑이,타이거 김
분야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하유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군인
성별
대표경력 23연대 연대장
출생 시기/일시 1922년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49년 11월 - 23연대장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50년 - 경남지구 계엄 민사부장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53년 11월 28일 - 경상남도 경찰국장에 임명
몰년 시기/일시 1964년 1월 30일연표보기 - 사망
출생지 경상북도 경산시
활동지 부산광역시

[정의]

부산 주둔 23연대장과 경남지구 계엄민사부장을 지낸 군인.

[가계]

김종원(金宗元)은 1922년 경상북도 경산에서 태어났다. 일본 하사관 출신으로 일본식 이름은 금산종원(金山宗元)이다.

[활동 사항]

김종원은 경상남도 마산 주둔 5연대 1대대장으로서 1948년 10월 여순 사건을 진압하였다. 그는 마산에서 창설된 16연대 부연대장을 지냈다. 1949년 11월에 부산에 주둔했던 23연대 연대장을 역임한 후 3권을 행사하는 경남지구 계엄민사부장(民事部長)에 올랐다. 그때 나이 28세였다. 1950년 10월경 경상남도 김해군 진영 국민보도연맹원 학살 사건 관련자들이 부산 군사 재판에서 사형과 징역 10년형 등이 선고되었을 때, 3000만 원을 수뢰하고 그들을 석방시켰다고 전한다. 이 사실은 1960년 6월의 국회 증언 청취 속기록에 전한다.

또한 김종원은 거창 학살 사건과 관련한 국회의 조사 활동을 방해하기 위해 국군을 공비로 가장시켜 현장으로 가던 국회 의원들과 군인·경찰·검사 합동 조사반을 습격하여 조사 활동을 중단시킨 장본인이다. 이 사실이 나중에 들통 나 1951년 9월 군법 회의에 회부되었고, 재판 결과 징역 3년이 선고되었으나 8개월가량 복역한 뒤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의 특사로 풀려났다. 그는 6·25 전쟁 때 영덕·포항 전투에서 공을 세워 ‘백두산 호랑이’라는 별명을 얻고, 외국 언론에 ‘타이거 김’으로 소개될 정도로 군 내부에서 확고하게 입지를 굳혔다.

김종원은 경남지구 계엄민사부장으로 있으면서 1951년 1월 24일부터는 경남지구 병사구사령관(兵事區司令官)도 겸임하였다. 이후 1952년부터 지리산지구 전투사령관을 거쳐 전라북도 경찰국장, 경상남도 경찰국장, 경상북도 경찰국장, 전라남도 경찰국장을 지냈다. 경상남도 경찰국장 시절에 참모 회의 중 인플레 때문에 시민들이 큰 고생을 한다는 말을 듣고 “수사과장, 당장 가서 ‘인플레’ 잡아와!”라고 지시하였다는 등 수많은 일화를 남겼다. 1956년 대통령 선거 뒤 부정 선거의 공을 인정받아 내무부 치안국장에 임명되었다.

김종원은 1960년 5월 장면(張勉) 부통령의 저격 사건 배후로 지목되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구속되었다. 이후 징역 15년을 받고 서울교도소에서 복역하다가 1962년 9월 7일 검찰의 형집행 정지 지시로 출감하였고, 1963년 ‘5·16 혁명 기념 특사’로 석방되었다. 1964년 1월 30일 지병인 당뇨병으로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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